[세계 석학에 듣는다]

부시의 실패한 4년/조지프 스티글리츠


전세계 많은 이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서 경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소홀한 지에 놀라고 있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는다. 내가 부시 대통령이라도 경제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경제, 그것도 지난 3년 반 동안의 미국 경제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꽤 있다. 따지고 보면 연평균 2.5% 경제 성장률은 클린턴 시절에 비하면 눈에 띄게 둔화된 것이기는 하나 유럽의 무기력한 1% 성장에 비하면 여전히 강세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통계 속에는 귀가 번쩍 뜨일 사실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평균적인 미국 가정이 3년 반 전보다 더 못살게 됐다는 점이다.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하고 필수적인 가계지출비가 치솟으면서 미국 가정들이 쪼들리는 가운데 실질소득 중간값은 실질가치로 따져 1500달러 이상 떨어졌다. 요컨대 성장의 과실은 오직 최상위 소득계층, 즉 지난 30년 넘게 윤택하게 생활해 왔고 또 부시의 세금 감면으로 가장 이득을 많이 본 계층에게 돌아갔다.

예를 들어 현재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인은 지난 2000년보다 520만명 늘어난 약 4500만명에 이른다. 다행히 건강보험에 가입한 가정이라도 연간 7500달러로 거의 두배나 뛴 보험료를 낼 각오를 해야 한다. 미국 가계는 또 갈수록 고용불안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이 집권한 동안 일자리가 순손실을 기록한 것은 지난 1930년대 초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부시 지지자들이 이렇게 묻는 것은 타당하다. 이게 정말 부시의 책임인가. 경기침체는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이에 대한 명백한 대답은 부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대통령은 유산을 물려받는다. 부시가 취임했을 때 경제는 둔화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하는 막대한 흑자재정도 함께 물려줬다. 이는 활기찬 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부시는 흑자재정을 흥청망청 써버렸고,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을 펴면서 결국 흑자는 GDP 5% 규모의 적자로 바뀌고 말았다.

경기 둔화기에도 유지됐던 생산성 증가는 기회와 동시에 도전이었다. ‘만약’ 경제를 잘 관리했다면 미국인들의 소득이 지난 90년대처럼 꾸준히 오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기회였다. 그러나 활기찬 성장을 통해 신규 노동자들을 흡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경제를 관리하는 것은 도전이었다. 부시는 이 도전에 실패했고, 미국은 부시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 기회를 잃었다.

사실, 부시의 감세는 경기를 부양하는 데 일부 기여했다. 단기적으로(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논란이 있지만) 경기는 감세가 전혀 없었을 때보다 더 강한 모습을 보인 듯하다. 그러나 훨씬 적은 비용으로 훨씬 더 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정책들이 있었다. 부시의 목적은 경제를 튼튼하게 유지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세금 아젠다를 강하게 밀어붙여 누구보다 어렵지 않게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짐을 없애는 데 있었다.

실패한 부시의 정책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실패한 정책 탓에 미국 경제는 앞으로도 계속 훨씬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당파를 초월한 의회 예산국(CBO)은 설사 부시가 수조달러가 드는 새로운 지출 계획이나 감세를 실행하지 않더라도 재정적자가 가까운 장래에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부시가 약속한대로 절반으로 줄지도 않을 것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인프라, 교육, 보건, 기술 등 장차 건전한 미국 경제를 뒷받침할 지출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결국 장기 성장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재정정책으로 경제가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에 통화정책이 더 큰 짐을 져야 했다. 낮은 이자율은 (약간) 효과를 발휘했지만 대부분은 투자를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계가 모기지를 재연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에 따라 가계 빚 증가는 이미 파산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경기회복을 저해할 것을 보인다.

나라빚 역시 가파르게 늘었다. 막대한 무역적자 때문에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인 미국이 하루에 20억달러가량을 해외에서 빌리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달러 약세로 이어지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주요인이 되기도 했다.

만약 부시가 잘못을 인정하고 정책 방향을 바꾼다면 어느 정도 미래에 희망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시는 경제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 2003년 부자들을 위한 감세가 약속과 달리 경제살리기에 실패한 것을 봤으면서도 부시 행정부는 전략 수정을 거부한 채 오히려 똑같은 약을 더 많이 처방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제 영구적인 감세를 약속하고 있다. 정말 위험한 것은 부시가 재선된다면 이 약속을 꼭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다.

8월말께 나는 9명의 다른 미국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과 함께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어떤 경제학자들이라도 두명 이상이 어떤 문제에 합의하기는 힘들다. 그 두명이 노벨상 수상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번 경우엔 너무나 걱정이 깊은 나머지 어떤 이견도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는 장기적으로 나라 경제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무모하고 극단적인 길을 걷고 있다… 경제 리더십 측면에서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간의 차이는 우리가 겪은 어떤 대통령 선거 때보다 더 벌어져 있다. 부시 대통령은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가 거의 모든 경제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믿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부시는 전적으로 틀렸으나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독선적이다.

/정리= dympna@fnnews.com 송경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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