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한 오해/이병주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장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10.05 13:45

수정 2014.11.07 13:27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 출자 동향을 지난 9월29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의 출자총액은 지난해에 비해 13조1000억원 감소했고 출자한도 내에서 출자할 수 있는 여력도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출자 여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일부 기업과 관련해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기업투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오해는 기본적으로 출자총액제한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원인이 있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대기업집단이 계열사간 출자를 통해 가공자본을 형성, 지배력을 유지·확장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 1987년에 도입한 제도다. 계열사 등 타 회사 주식 보유를 순자산의 25%로 제한하는 제도로 투자 억제와는 전혀 무관하다.


예를 들어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에 소속한 순자산 100억원의 A라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우선 A사는 순자산의 25%인 25억원 범위 안에서는 자유롭게 타 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사업부를 만들거나 공장부지를 매입하거나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고 공장을 신·증설하는 등의 행위는 타 회사 주식 취득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타 회사 주식 취득의 경우에도 사회간접자본(SOC)법인 출자, 동종·밀접 업종 출자, 공기업 민영화 출자, 외국인투자기업 출자, 기업구조조정 출자, 부품·원료·소재 생산 중소·벤처기업 출자, 신산업 출자 등은 적용제외·예외인정 제도 등을 통해 출자 한도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의 적용제외·예외인정 출자금액은 13조4000억원으로 출자총액의 60.1%에 이르고 있다.

공정위 발표에서 출자 여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기업은 ‘출자’ 여력이 없을 뿐이지 ‘투자’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업들도 충분한 자금과 좋은 투자처가 있다면 직접 투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실 출자 여력이 없는 회사의 경우 적용제외·예외인정 출자를 충분히 하고 있으면서도 이외의 출자가 지나쳐 출자 한도를 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투자 여력이 없는 회사의 예로 거론되는 S사의 경우 4월1일 현재 순자산이 6조6000억원인데 순자산의 45.4%에 이르는 3조원을 출자하고 있으며 이중 적용제외·예외인정 금액은 전체 출자총액의 53%인 1조6000억원에 이른다. 충분히 적용제외·예외인정을 받고 있는 데도 다른 회사에 대한 과도한 출자 때문에 결국 출자 여력이 소진된 것이다.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투자를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증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우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대기업들의 투자 동향을 보면 대기업 투자는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출자총액이 줄어들고 있는데도 투자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은 출자와 투자가 큰 관련성이 없다는 실증 결과다. 올해도 30대 민간그룹의 투자 계획은 36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29조7000억원에 비해 24.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민간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도 출자총액제한 제도와 투자 부진은 크게 관련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지난 2월에 삼성경제연구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자총액 등 정부 규제가 투자 부진의 주 원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0.8%에 불과해 최하위로 나타났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전경련 설문조사도 마찬가지다. 기업투자 부진의 주요인으로 제시된 9가지 중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7위에 꼽혔을 뿐이다. 전문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03년도 연구 결과에서도 출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의 증가와 투자자금의 증가는 큰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투자율과 피출자 증가율의 상관계수는 6.4%, 투자액과 피출자 증가액의 상관계수는 2.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출자와 투자가 직접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실증연구 결과다.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서는 투자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몫은 기업들이 투자하고 싶은 여건을 조성하는 일일 것이다. 투자 여건의 핵심은 투자가가 위험을 감수한 만큼의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시장경제 시스템의 확충인 것이다. 사실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독립·중소기업과 대기업간 공정한 경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현 시장상황에서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기업투자를 저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투자를 활성화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무한정 유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는 2007년에 시장 상황을 평가해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시장자율 감시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고 판단되면 출자총액제한 제도 등 정부 직접 규율을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