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실감 안나는 내수회복/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10.12 13:47

수정 2014.11.07 13:13



요즘 내수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면 자주 나타나는 반응이 ‘지표로는 살아나는지 몰라도 체감 경기는 영 아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예측 기관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 역시 실감하지 못하는 듯 하다. 내년 경영 실적이 과연 개선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표 경기와 체감 경기가 따로 노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것은 수출과 내수, 첨단업종과 전통업종 등에서 나타나는 경기 양극화 현상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는데 바로 가격 조건의 악화다.


경제성장률이나 소비 증가율 같이 우리가 많이 듣게 되는 지표들은 대개 물량 개념의 실질 변수들이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서 실제로 보거나 듣는 것은 명목 변수다. 가계에 중요한 소득과 소비가 그렇고 기업들의 수익도 명목 개념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우리 경제는 대외거래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수입가격과 수출가격의 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경제학에서는 우리가 수출하는 제품의 가격에 비해 수입하는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을 교역조건 악화라고 부른다. 이 경우 기업들 입장에서 볼 때 원자재 가격은 오르고 자신이 수출하는 제품의 가격은 하락하니까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수입물가가 상승하면 가계는 다른 제품을 구입할 여력이 줄어들어 구매력이 약화된다. 이러한 교역 조건의 변화까지 반영한 지표가 국민총소득(GNI)으로 최근에는 국내총생산(GDP)보다 체감 경기를 더 잘 반영한다 해 중시하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를 GNI 측면에서 보면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4분기 GNI 성장률은 0%에 그쳤으며 하반기에도 개선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유가 상승으로 수입 단가는 상승하는 반면 수출 단가는 미약한 상승세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GDP 성장률이 3%대의 회복세를 보이고 소비 지표가 증가하고 있는데도 체감 경기는 별로 개선되지 않는 이유다.

문제는 앞으로도 교역조건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선 수입 단가를 좌우하는 유가가 내년에도 고공행진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고유가에도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고 중국, 인도와 같은 개도국의 석유 수요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 시설에 대한 투자가 향후 수요 증가를 쫓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당분간 원유 수급 악화에 대한 우려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수가 수출가격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출하는 정보기술(IT) 제품 가격은 그 동안 끊임없는 가격 하락 압력을 받아왔다. 가격 하락은 두 가지 양면적인 효과가 있다. 우선 가격 하락은 수요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액정표시장치(LCD) TV는 전에는 가격이 비싸 구매하기 어려웠지만 계속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IT 부문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가격 하락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이것이 새로운 수요 창출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 과잉으로 가격 하락이 지나칠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글로벌 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축적한 현금을 바탕으로 선택적으로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마쓰시타와 같은 일본 기업들은 중국에 대규모 클러스터를 조성하며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가 하면 글로벌 화학 기업들도 중동, 아시아 지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만약 세계적인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해당 분야의 제품 가격 폭락과 함께 기업들도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IT 분야의 가격 하락이 심화될 경우 전체 교역조건 악화는 물론 경기 회복에도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정부는 내년에 우리 경제가 5% 정도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여러 가지 계획을 짜고 있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교역조건 악화라는 충격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경기 안정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끊임없는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적인 공급 확대로 일반적인 상품들의 가격 하락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제품과 브랜드를 고급화하고 사업의 구성을 차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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