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불안정한 사회와 지적 술책/강종희 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10.19 13:49

수정 2014.11.07 12:59



지적 술책이 만연하는 나라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실제 사회가 안정되지 못할수록 지적 술책이 기승을 부린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려면 지적 술책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적 술책이란 관료와 학자, 언론인 등 소위 지식인들이 납득할만한 설명 없이 원래 맥락에서 벗어난 전문적 개념을 사용해 자기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방법을 일컫는다. 이런 술책은 주로 과학적 개념과 전문어휘에 미숙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다. 대표적 지적 술책으로 조작된 여론조사를 꼽을 수 있다.


여론조사는 설문이 성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똑같은 설문 내용이라 해도 질문 방식에 따라 응답이 달라질 수 있다. 대학입시 논술고사 강화에 대한 다음 두 설문을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설문 A:학생 선발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입시 논술고사 강화를 지지합니까. 설문 B:고교 평준화 시책을 저해하는 대학입시 논술고사 강화를 지지합니까. 만약 논술고사 강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후자의 설문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유형은 다르지만 이런 기대심리를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는 지적 술책도 끊이지 않고 있다. 만약 내년도 5%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확률이 60%라는 말과 5% 달성을 실패할 확률이 40%라는 말 중 언론은 어느 쪽으로 발표하겠는가. 결과는 친 정부적인 언론매체와 그렇지 않은 매체로 양분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한편, 우리 사회의 지적 술책은 최근 들어 더욱 정치(精緻)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 비근한 사례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교묘하게 뒤섞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선행 사실과 후행 사실이 원인과 결과로 나타날 때 이를 인과관계라 한다. 즉 어떤 결과가 어떤 행위를 통해 발생했다고 주장하려면 그 결과와 행위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불가분의 관계가 인과관계다. 보통 우리 사회의 병폐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지식인은 인과관계를 슬그머니 상관관계 분석으로 대치하고 있다.

두 변량 사이 한 쪽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면 다른 쪽이 증가 또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일 때 이 두 변량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한 쪽이 증가할 때 다른 쪽도 증가하는 관계를 양의 상관관계라 하고 다른 쪽이 감소하는 경우를 음의 상관관계라 부른다. 예컨대 사교육비가 증가함에 따라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면 이 둘은 음의 상관관계다. 만약 여기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는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바꿔치기가 우리 사회에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끝으로 일반국민이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용어를 남용하는 지적 술책 역시 우리사회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당장 경제신문만 들춰봐도 ‘카드방가’ ‘SUV’ ‘RFID’ ‘P-CMM’ 등 쉽게 알 수 없는 용어들이 수두룩하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 노희찬 의원이 법제처장을 상대로 즉석 한자시험을 치른 사실이 시사하는 바 우리 사회의 용어 사용에 의한 지적 술책이 고질적임을 말해준다.

지적 술책이 만연하거나 고질화되면 의도하지 않은 혼란이 초래된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사상적 충돌이 그런 사례의 하나다.
부동산 문제와 계층적 갈등 역시 지적 술책의 산물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식인들의 지적 술책을 일소해야 한다.
이는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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