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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세계 철강업계 M&A바람/안정현 파리특파원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09 14:20

수정 2014.11.07 00:07



지난달 말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인도 재벌 미탈 스틸이 동종 업계 세계 2위며 유럽 1위인 아르셀러에 대한 인수합병(M&A) 계획을 발표했다.

주식 공개 매집 방식을 통해 이뤄질 이번 합병 계획의 발표가 있자마자 아르셀러측은 이 계획을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규정하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방어하겠다고 밝혔다.

미탈 스틸의 이번 합병 계획은 세계 철강업계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성사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철강업계 재편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어 왔다. 철강산업은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매우 분산된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철강업은 다른 관련산업에 비해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철 채굴업은 세계 3대 철광업체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철강의 최대 수요 산업인 자동차 산업은 세계 5대 업체가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집중구조다. 반면에 철강산업의 경우 5대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19%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구조 때문에 철강업체들은 구매 업체와 판매 업체 모두에 가격 협상력에서 열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위 아래 양쪽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철 채굴 업체들은 철강 생산업체에 대해 일방적으로 주문가격을 70%나 인상하기도 했다. 이미 몇년 전부터 미탈 스틸과 아르셀러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장기적으로 철강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연간 1억t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공언해 왔다.

이번 합병이 성사될 경우 세계 양대 업체의 합병으로 매출액 600억유로, 연간 1억1500만t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전 세계에 32만여명의 노동자를 거느린 초대형 철강업체가 탄생하게 된다. 이 규모는 세계 3위인 일본제철을 3배 이상의 격차로 따돌리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합병회사는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

미탈 스틸이 합병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근거다. 이에 대해 아르셀러는 양적 성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미탈 스틸은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동안의 성장 모델이나 기업 문화가 다를 뿐만 아니라 지역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어 시너지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 70년대 이래로 미탈 스틸과 아르셀러는 세계 철강업계의 재편을 주도한 주역들이었다. 미탈 스틸의 창업자인 라크시미 미탈은 인도 출신으로 30년 전 연간 3만5000t 생산 규모의 자그마한 제철소로 시작했다. 옛 소련 붕괴 후 이 지역의 공장들을 싼 값에 사들여 아웃소싱 등 미국식 구조조정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후 카자흐스탄, 루마니아, 폴란드, 알제리, 남아공에 이르는 방대한 제철그룹을 형성하게 됐다.

중국의 한 철강 기업과도 제휴관계를 형성했으며 지난해엔 미국의 최대 철강업체인 ISG를 인수함으로써 아르셀러를 제치고 세계 최대 철강그룹이 됐다. 미탈 스틸은 지난 4년간 생산 규모에서 2배, 시장 가치에서는 15배나 성장했다. 이에 힘입어 미탈은 지난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갑부 랭킹에서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에 이어 세계 3위 부자가 됐다.

아르셀러는 스페인, 룩셈부르그, 프랑스의 최대 철강회사들이 지난 2002년 합병해 탄생한 유럽 최대 철강회사로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CEO는 프랑스인인 기 돌레가 맡고 있다.

이 그룹 역시 최근의 경영 전략은 외형적 성장이다. 지난해의 경우 매출액의 70% 이상이 유럽에서 올린 것이었지만 향후 2010년까지 유럽 역외 매출액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우선 지역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동유럽, 터키 등이다. 미탈 스틸의 미국 ISG 인수에 대응해 최근 캐나다의 철강 그룹인 도파소를 인수함으로써 북미지역에도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이번 인수합병건은 철강업계의 향후 향배를 보여주는 좋은 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연합 국가들내에서 난기류를 형성하는 이슈가 되고 있기도 하다. 우선 기간산업의 핵심 기업을 타 대륙 업체에 넘겨도 되는가 하는 문제다.

몇몇 주요 산업의 경우 유럽의 대표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탈 스틸은 이에 대해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유럽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있는 유럽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미탈 일가가 80% 이상의 압도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에게는 미탈 스틸은 인도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기업 인수합병 이후에 닥칠 구조조정에 대한 후유증 걱정이다. M&A 뒤에는 늘 공장 폐쇄와 해고가 따라붙게 마련이다.
전체 9만3000명의 노동자 중 3만명이 자국에 있는 프랑스의 반응은 더더욱 민감하다.

한 금융기관에 따르면 이번 M&A건이 마무리되면 다음은 아시아 기업들이 인수합병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철강업계와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 cameye@fnnews.com 김성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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