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적대적 M&A 대책 필요하다/송계신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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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는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공격수와 이를 막으려는 수비진이 펼치는 묘책의 경연장이 될 것 같다.

외국인투자가들의 경영권 참여 요구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데다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경영 간섭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어서다.

심지어 일부 투자가들은 경영진 교체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경영진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상황이다 보니 주총을 앞둔 기업들로서는 떨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주총이 유독 관심을 끄는 것은 외국인이 경영참여 목적으로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상장기업이 109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의 주식을 5% 이상 갖고 있는 외국인투자가는 450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82명이 109개사의 지분을 경영권 목적으로 사들였다. 잠재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휘말릴 위험이 있는 국내 상장기업이 109개나 되는 셈이다.

게다가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배당금 결정, 대표이사(CEO) 선임 등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경영참여를 본격화할 태세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그간의 소극적이던 자세에서 공격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이번 주총에서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CEO를 교체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놓는다.

미국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의 공격을 받고 있는 KT&G는 올해 주총 경연에서 단연 주연급이다.

아이칸측이 경영참여 선언과 함께 지분 확보에 나서고 이에 맞서 KT&G가 지원세력 늘리기로 맞불을 놓으면서 양측의 세 싸움이 뜨겁게 달궈졌다.

아이칸이 동원할 수 있는 우호지분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1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분위기가 더욱 심상치 않다. 표 대결이 예상되는 KT&G의 주총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칸은 실적은 좋지만 대주주 지분이 취약해 경영권 공략이 가능한 기업을 주로 공격 대상으로 삼아왔다.

예컨대 지난해 2월 미국 커맥기사의 지분을 사들인 뒤 자사주 매입, 화학부문 매각 등을 통해 주주들에게 100억달러를 돌려줘야 한다고 요구해 대규모 차익을 챙겼다. 지난해 8월에는 타임워너사의 지분 3.1%를 다른 펀드 3개와 공동으로 매입한 뒤 회사 분할과 자산 매각, 200억달러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해 타임워너측의 자사주 매입 확대와 서적출판부문 매각 등을 이끌어냈다.

아이칸은 또 미국 블록버스터사, 밀란래버러터리사, BKF캐피털사와 캐나다 페어마운트 호텔 & 리조트사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했다.

국내 기업 역시 아이칸의 이같은 공격 행태를 비켜가기 힘들어 보인다.

국제금융센터가 최근 "아이칸이 추가지분 매입, 우호세력 확보 등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주가상승을 이끌어낸 뒤 지분을 KT&G나 시장에 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당기간 KT&G 경영진을 압박하면서 주가를 끌어올려 이익을 최대로 늘리는 것이 아이칸의 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은 눈 앞에 닥친 경영권 위협을 막기 위해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다. 경영진 교체 등의 의결 요건을 강화한 '초다수 의결제'나 '황금낙하산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시도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경영권 방어에 치중할 경우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장기 경영전략을 세우는 것은 아무래도 뒷전이다.

따라서 정부가 공공성이 있거나 독점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경영권 보호방안을 검토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 지배주주의 사전승인제도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 이익에 반하는 적대적 M&A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 외국에서도 공공성이 있는 기간산업에 대해서는 외국자본으로부터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보호장치를 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젠 우리도 기간산업에 대한 국제 투기자본의 적대적 M&A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 ksso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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