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진대제 차출 유감/곽인찬 논설의원

지령 5000호 이벤트


3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대 내각 각료들을 국민에게 소개하면서 인선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미국 대통령을 본뜬 것이지만 참신했다. 그때 이런 말을 했다. “가급적이면 오래 책임지고 일하도록 하겠다. 2년에서 2년 반까지의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 … 원칙적으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는 것도 좋겠다.”

결과는 영 딴판이다. 지난 3년 동안 노대통령은 19개 부처에 57명의 장관을 임명했다. 평균적으로 부처마다 장관 3명이 1년씩 근무한 셈이다. 수시로 갈아치웠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업무를 파악하고 일 좀 해볼까 하면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라는 방(榜)이 붙었다. 이러니 참여정부 장관직의 가치가 속절없이 평가절하되고 하향 평준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예외였다. 참여정부 최장수 각료인 진장관은 동시에 옛 체신부를 포함한 역대 정통부 장관 중에서도 가장 오래 재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노대통령이 선거 때마다 장관들을 차출하는 게 못마땅하면서도 진장관만은 그냥 놔두는 걸 보고 위안을 삼곤 했다. 맡은 업무 자체가 정치와 동떨어진데다 그가 일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평가를 대통령이 존중하는 걸로 봤다.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는 장관이 적어도 한 명쯤은 나올 걸로 믿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믿음이 여지없이 깨졌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상품성’이 큰 진장관을 차출해 지방선거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진장관을 제외하면 대통령이 이번 개각을 통해 장관 몇 명을 바꾼 것에 대해선 만족한다. 내각을 출마 대기소쯤으로 여기고 나랏일보다는 콩밭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감투를 벗는 게 개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바람직스럽다.

진장관은 아쉽다. 납세자 입장에서 그는 연봉을 주는 게 아깝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무위원이었다. 공무원 임금 규정을 바꿔 특별 보너스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는 얼마 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장관 연봉이 얼마나 되느냐는 물음에 “기업에 있을 때에 비하면 2주치 정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로 있을 때와 비교한 말일 게다. 장관으로서 그는 삼성전자 CEO 때만큼, 아니 그 시절을 능가하는 성과를 올렸다. 예전엔 삼성전자만 생각했지만 지난 3년 동안 그는 정보통신 정책의 사령탑으로 ‘주식회사 한국’의 정보기술(IT) 경쟁력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렸다. 지상파 디지털미디어방송(DMB), 무선인터넷 와이브로 기술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IT 산업은 780억달러어치를 수출해 전체의 약 27%를 차지했다. IT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이른다. 세계 최강 IT 코리아가 진장관의 목표였고 그것이 곧바로 국가 목표가 됐다.

이런 사람을 꼭 선거판에 징발해야 했을까. 경기도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먹고 살거리를 창출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까. 왜 하필이면 도지사인가. 언제부터 국정을 다루는 장관보다 지역 일을 보살피는 도지사나 시장이 윗길이 됐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장관직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붙잡혀 왔다. 일면식도 없던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10년, 15년 뒤 먹고 살거리를 만들어 달라면서 진사장이 제일 알맞다고 했다. 못 한다고 하기 어려워 ‘알겠습니다’고 한 뒤 잡혀 와서 먹고 살거리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장관으로 붙잡혀 갔던 진장관이 이번에는 도지사 후보로 붙잡혀 왔다. 3년간 발탁하고 중용한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었을 게다.

그런데 진장관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좀 실망스럽다. 언론에 그의 이름이 한창 오르내릴 때 그는 “행정은 경영과 비슷하지만 정치는 선출이라는 길목을 거쳐야 한다”면서 “선거에는 자신 없고 관심도 없고…”라며 출마설을 부인했다. 올해 초 아들이 국적 회복을 신청한 것이 알려졌을 때도 정통부는 “진장관의 지자체 선거 출마설 등과는 무관하다”고 해명 자료를 냈다.
그랬던 그가 개각 발표 직전엔 “필요하거나 봉사할 데가 있으면 가겠다”고 말을 바꿨다. 자서전 성격의 책도 냈다.

벌써부터 약빠른 정치인 흉내를 내는 걸까.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 진대제’를 얻는 대신 ‘장관 진대제’를 잃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밑지는 장사 같다.

/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