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삼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이장규 증권부장

이장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3.20 14:38

수정 2014.11.06 09:26



우리에게 삼성은 무엇인가. 이제는 진부해진 질문을 다시 하는 것은 올해도 '삼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듯하기 때문이다.

문제에 대한 답은 똑같다. '세계 최고 브랜드,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 코리아를 먹여살리는 기업,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힌 기업, 그래서 애정만으로 대할수 없는 정경유착의 대명사, 재벌개혁의 대상….'

한 시민단체가 다시 삼성(에버랜드)을 고발할 모양이다. 에버랜드가 금융지주사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삼성지배구조 논란'이 잠잠하더니 2005년 재무제표 제출을 계기로 금융지주사법이 다시 도마위에 오를 조짐이다.

시민단체의 주장은 이렇다.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386만8800주, 19.34%)을 가지고 있는데 지분법을 적용하면 금융사인 '생명'의 주식가치가 회사 자산의 절반을 차지하므로 에버랜드는 공정거래법에 의해 금융지주사라는 것이다. 법은 금융?비금융 분리원칙에 의해 금융지주사가 비금융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에버랜드는 물론 자회사격인 삼성생명은 비금융사의 주식을 처분해야 하고 그러면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을 축으로 하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도가 깨진다는 것이다.

그럼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에버랜드는 지주회사인가. 이번에 제출된 재무제표를 아무리 뒤져봐도 에버랜드가 가진 삼성생명의 주식가치(순자산 기준 1조6830억원)가 회사자산(3조4685억원)의 절반을 넘는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미 지주회사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 2003년말을 기준으로 해도 그렇고, 지분법을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지분법 논란도 살펴보자. 지분법은 지분을 많이 출자한 자회사의 경영실적을 모회사 실적에 일부 반영하기 위한 제도다. 지분법을 적용하면 주식가치를 시가대로 평가하므로 '생명'의 주식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게 잡혀 에버랜드가 지주회사가 될수도 있다. 지분법 적용대상이 되려면 자회사 지분율이 20%를 넘어야 하는데 현재 지분율은 19.34%. 20%에 못미치더라도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임원선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 지분법 적용대상이 된다며 참여연대는 이 부분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삼성이라고 이름 붙은 모든 계열사는 지분율과 상관없이 서로 지분법 적용대상이 되고 만다. 그럴 경우 삼성전자 지분 4%를 가진 삼성물산은 지분법 회계를 통해 전자 이익의 4%(지난해 3000억원)를 추가이익으로 잡아야 한다. 이야 말로 분식회계다.

지분법은 자회사의 실적을 모회사의 재무제표에 지분율 만큼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계기준이지, 금융지주사 편입 여부를 판정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다. 게다가 '지주회사'는 기업투명성 제고를 위해 설립·전환이 허용된 제도(강제로 편입하는 게 아니다)라는 입법취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주회사를 들어 우회적으로 주장하지 말고 차라리 삼성의 순환출자 구도를 빨리 깨라고 본질을 거론하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싶다.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려는 시도는 '생명보험사 상장'에서도 읽을수 있다. 계약자간 이익배분이니 자산재평가 차익이니 하지만 그동안 상장이 무산된 건 삼성의 대주주들에게 떼돈을 안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삼성생명이 없었다면 생보사 상장 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 와중에 생명보험산업의 미래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러다 보니 상장사 한 곳없는 생보업계는 금융권역중 가장 '낙후업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삼성생명의 자산규모는 90조원으로 하나은행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납입자본금은 불과 1000억원. 1조원인 하나은행의 10분의 1이고 중형증권사의 절반수준이다. 이래서야 무슨 생보업계의 발전은 논할수 있으랴.

생보사 상장이 다시 추진되고 있는 이때, '글로벌기업' 삼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묻지 않을수 없다.

흔히들 삼성문제의 해법은 삼성기업과 삼성가(家)의 분리에 있다고 한다. 전적으로 옳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시기다. 삼성가(家)의 역량이 글로벌 기업에 못미칠 때, 지배구조 문제로 인해 경영에서 실패할 때, 시간이 흘러 때가 무르익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분리가) 이뤄지지 않을까. 그전에 먼저 삼성이 스스로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도록 숨통을 틔여줄 필요가 있다. 길은 15년 넘게 끌어온 삼성생명 상장에 있다.
채권단이 제기한 삼성차 부채관련 4조5000억원의 소송도,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문제도, 기업경쟁력 제고도 '생명' 상장없인 결코 풀수 없다. 정부가 해결의지를 가지고 삼성과 시민단체가 서로 양보하면 의외로 쉽게 풀릴 일이다.
이번에도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다면 밖에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삼성'이라지만 우리에겐 애증이 교차하는 반쪽기업일 뿐이다.

/ jkle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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