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부자의 허영심을 자극하라/곽인찬 논설위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4.04 14:40

수정 2014.11.06 08:18



‘팍스 로마나’를 수백년 동안 지탱한 공로는 강력한 방위력 못지 않게 ‘넓고 얕은’ 세제에도 있다는 게 로마사(史) 전문가인 시오노 나나미의 해석이다. 초대 황제가 기초를 닦은 이른바 ‘아우구스투스 세제’의 특징은 납세자를 먼저 고려했다는 데 있다. 국가는 세입이 허용하는 범위의 일에만 손을 대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국가가 할 일을 먼저 정해 놓고 그에 맞춰 세금을 걷지 않았다는 뜻이다.

‘넓고 얕은’로마제국 세제

예컨대 로마 시민들에게는 상속세(5%)와 노예해방세(몸값의 5%), 속주민에게는 속주세(10%)를 물렸다. 로마시민과 속주민 모두에게 물린 간접세로는 관세(1.5∼5%·사치품은 25%)와 소비세(1%)가 있다.
원로원 의원이나 상인 등 부자들이라고 특별히 더 많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이처럼 단순하고 낮은 세율이 유지되는 동안 ‘팍스 로마나’는 전성기를 누렸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충분한 세원도 확보하지 못한 채 어떻게 로마는 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까. 대답은 이익의 사회환원에 있다. 황제들은 수천명이 들어가도 넉넉한 대형 공중목욕장을 지어 시민들에게 기증했다. 이런 목욕장에는 황제의 이름이 붙었다. 공공시설물에는 ‘폼페이우스 극장’처럼 건축비를 댄 사람이 속한 가문의 이름을 붙이는 게 관례였다. 콜로세움으로 알려진 원형 투기장도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 투기장’이다.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로마의 오랜 전통이었다. 황제가 앞장 섰고 원로원 의원 등 사회 지도층이 뒤를 따랐다. 공공시설물에 이름을 붙여 기증하는 것 자체가 가문의 영광이었다. 시민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최상위 지도층만 사회환원에 열을 올린 게 아니다. 시민들은 도로를 보수할 때 일부 구간의 비용을 자발적으로 냈다. 대신 길 옆에 비석을 세워 기증 사실을 후대에 길이 남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시오노에 따르면 “로마인의 묘비 뒷면은 마치 이력서 같은데, 평생 동안 맡은 공직이나 군대 경력과 함께 각자의 처지나 재력에 따라 다양하게 공공심을 발휘한 결과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로마는 부유층의 허영심까지도 적절히 자극할 줄 아는 세련된 제국이었다. 빈부 격차를 줄여야 한다며 상위 20%한테 세금을 더 내라고 윽박지를 필요가 없었다. 부유층에게 재산은 떳떳한 자랑거리였고 공공시설물 기증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200년가량 지탱해 온 ‘아우구스투스 세제’는 서기 3세기에 붕괴한다. 세율 인상과 함께 특별세·임시세가 남발되기 시작했다. 농경지에는 토지세, 사람에겐 인두세를 물렸다. 간접세 위주의 로마제국 세제는 직접세 위주로 바뀐다. 이같은 변화가 제국이 서서히 멸망(476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자발적 기증에 시민들 박수

특히 3세기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해마다 황제가 국가예산을 먼저 결정하도록 했다. 세금은 그 액수에 맞게 거뒀다. 납세자들의 사정은 뒷전으로 밀렸다. 국가보다 납세자를 우선하던 ‘아우구스투스 세제’는 옛말이 됐다.

그러자 이익의 사회환원이 자취를 감췄다. 무거운 직접세가 부유층의 허영심과 기증 의욕을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세금을 피해 땅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드는 일이 벌어졌다. “세금을 내는 사람보다 세금을 걷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는 원성도 터져나왔다. 이쯤되면 아무리 융성했던 로마제국이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다.

우리 사회에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을 놓고도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분명한 건 돈줄을 쥔 부유층을 적대시해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부유층한테 돈을 ‘뜯어낼’ 좀 더 영리한 방법은 없을까. 2000년 전 전성기 때 로마가 그 좋은 예를 보여준다.

/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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