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자유경쟁서 커가는 일류기업/허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박형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4.23 14:43

수정 2014.11.06 07:08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가 됐다.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부터 대학입시 경쟁, 취직 경쟁 등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회사에 취직해서는 동료들간의 실적 경쟁, 성과 경쟁, 승진 경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과거 많은 기업들은 정부가 만들어준 우산속에서 독과점 지위를 향유했으나 지금은 전혀 다르다. 글로벌화와 정보화는 곳곳에서 더욱 치열한 경쟁을 요구한다.
전혀 다른 업종이었던 통신과 방송산업도 어느새 서로의 영역을 넘보고 융합하는 상황이 됐다. 국내 시장에서 안주할 수 있었던 교육, 회계, 법률 등 서비스 분야마저 개방화로 외국업체와 경쟁을 벌이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에 걸맞도록 경쟁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쟁이란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 그리고 나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남을 이기면 된다는 생각,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경쟁에 대해 가진 인식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납품업체나 협력업체에 떠넘기기, 계열기업에 대한 막대한 물량밀어주기와 이를 통한 편법상속, 엉터리 광고와 인터넷을 이용한 사기 등 비뚤어진 경쟁문화에 따른 불공정거래 관행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독점기업이 제 음대로 가격을 올리고 안 팔리는 제품을 잘 팔리는 제품에 끼워넣는 횡포 또한 잘못된 관행의 한 단면이다.

경쟁에 대한 인식은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회피 주장으로 나타난다. 경쟁을 제살 깎아먹기라거나 대형화를 어렵게 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정치권이나 일부 학자들이 심심찮게 내세우는 ‘National Champion’ 이론도 그중 하나이다. 글로벌화한 환경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표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발상이다. 이를 위해 필요에 따라서는 대표선수의 독점을 용인하고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일견 그럴 듯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분야인 가전이나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등 대부분의 분야가 국내 시장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분야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일본 경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산업 중 국제경쟁력이 있는 산업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성은 국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의 차이다. 이를 통해 포터 교수는 국가 경쟁우위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을 분석한 모형인 다이아몬드 모델상의 각종 요인(요소조건, 수요조건, 연관산업과 지원산업, 기업전략·구조 및 경쟁관계)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경쟁’이라고 결론 지었다.

국내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의 존재는 기업의 지속적인 혁신과 기술개발을 유도한다. 나아가 국내기업간의 경쟁은 어느 나라안에 있어 생기는 우위들-요소비용, 국내시장의 접근 또는 특혜 등-이 자동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국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만이 갖는 경쟁우위의 원천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도록 해 기업의 동태적 효율성을 높이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은 기업 스스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고 소비자 후생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은 제품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떨어뜨리며 소비자에게 겸손한 기업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올바른 경쟁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된다는 식의, 경쟁에 대한잘못된 인식이 아니라 정당한 수단에 의한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정당한 수단에 의해 경쟁하겠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도 과당경쟁 방지나 업계의 공정거래질서 구축이라는 명목으로 특정산업에 개입하고 있는 정부 부문의 사고를 바꾸는 일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특정한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는 사고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기업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게임의 룰을 제시하고 반칙에 대해서는 엄정한 것, 그것이 치열한 경쟁시대의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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