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월드리포트

[월드리포트]도박꾼의 나라 돼가는 영국/안병억 런던특파원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5.11 14:49

수정 2014.11.06 06:06



신사의 나라로 알려진 영국이 최근 도박꾼의 나라로 바뀌고 있다.

도박이 합법화되고 세금도 없어져 유럽 각지에서 노름꾼들이 영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에 따라 도박 중독자들도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유명한 축구클럽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공격수 웨인 루니가 70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2억원의 도박 빚을 지고 있다고 공개한 적이 있다. 루니의 연봉이 최소한 몇백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 거액을 도박에 탕진했음을 알 수 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가 맹활약을 떨치고 있는 유럽 프로축구에서 잘나가는 클럽이다.
문제는 도박이 영국의 남녀를 불문하고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150년이 넘게 불법화됐던 도박은 지난 1961년에 합법화됐다. 합법화된 이후에도 마권 영업장은 밖에서 볼 수 없도록 커튼을 쳐야 했고 내부 조명도 어둡게 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94년 이런 규정조차 없어지면서 마권 영업장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축구나 경마 등 많은 경기에 내기를 거는 도박장은 이제 우체국 다음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가게가 됐다. 또 도박장이 음료를 제공하고 조명도 마음대로 하면서 많은 고객을 이곳으로 유인하게 됐다. 지난 2001년 도박세가 폐지된 점도 도박의 확산에 기여했다.

이러다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전 계층으로 퍼졌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 성인 3분의 2가 정기적으로 돈을 내기에 건다고 밝혀졌다. 90%가 지난 1년간 도박장에 간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는 점은 도박이 어느 정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가 늘어난 점도 노름꾼 급증에 한몫을 담당했다. 유명한 마권체인 래드브로크스는 13개 외국어로 인터넷 도박 서비스를 24시간 연중무휴로 제공하고 있다.

영국 회계감사원은 지난해 도박업소에서 거래된 돈이 약 530억파운드(약 90조원)라고 추정했다. 영국 가구당 1년에 약 34만원을 도박으로 썼다는 의미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도박이 그리 퍼져 있지 않은 나라의 시민들이 이곳에 와서 도박을 하기 때문에 영국 가구당 도박에 지출하는 돈은 이보다 다소 줄겠지만 적지 않은 액수인 것은 분명하다.

시민들은 점차 프로축구 경기에 많은 돈을 걸고 있다. 영국은 아직 스캔들이 없었으나 지난 몇년간 독일 프로축구에서 몇차례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졌다. 내기 도박에 관련된 범죄조직이 선수들과 심판들에게 접근, 거액을 제공하며 승부 조작을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오는 6월9일 독일에서 개막되는 월드컵을 계기로 약 10억파운드, 우리돈으로 1조7000억원이 넘는 돈이 월드컵 도박에 지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 월드컵은 최대의 내기 도박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도 도박산업의 활성화에 발벗고 나섰다. 전국에 17개의 카지노장 개설이 곧 허가된다. 이 가운데 1개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규모에 맞먹는 초대형 카지노다. 중부에 있는 항구도시 블랙플 등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많은 도시가 도시 재개발의 일환으로 카지노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연히 도박 중독자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이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도박 중독자를 상담해주고 치료해주는 갬케어의 한 관계자는 “도박 중독에 따른 가산 탕진은 물론 심리적 공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갬케어는 도박에 중독된 20대 초반의 여성을 지원, 이 여성이 투옥되지 않고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었다. 몇년 전부터 도박에 중독된 이 여성은 은행 대출을 받아 구입한 집도 도박으로 탕진했다. 도박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으려 하다가 은행 직원에게 도박에 탕진했음을 사실대로 말했다. 이어 경찰과 은행의 조사에 성심껏 협조, 소비자 파산선고를 받았다. 또 법원에서도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한 점이 정상 참작돼 투옥을 면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도박에 중독됐기 때문에 도박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심리적 공황상태를 겪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경제철학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도박산업까지 이처럼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가에 대해 이곳의 몇몇 언론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anpye@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