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저출산이 걱정이십니까?/곽인찬 논설위원



우리 경제가 불과 수십년 만에 잿더미에서 선진국 문턱에까지 이른 데는 뭐니 뭐니 해도 풍부한 노동력이 바탕이 됐다.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엘리트 관료 시스템도 근면한 노동력이 있었기에 빛을 발했다. 지난 1961년부터 외환위기 직전인 97년까지 우리 경제는 연평균 8%가 넘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이 시기는 ‘인구 보너스기’에 해당한다. 베이비 붐 세대가 생산가능인구(15∼64세)로 활동하면서 경제가 쑥쑥 자라는 시기다.

이 같은 혜택을 지금은 중국이 누리고 있다. 경기 과열을 우려한 나머지 중국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섰지만 먹혀들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반면 일본은 보너스기를 지나 고령화 단계에 들어선 대표적인 나라다. 노인층이 경제성장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때다. 주간 닛케이 비즈니스지가 ‘잃어버린 10년’의 진짜 원인을 ‘늙은 일본’에서 찾은 것은 탁월한 분석이다.

우리는 지금 일본의 뒤를 바싹 쫓고 있는 형국이다. 1.08명에 그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감안할 때 머지않아 일본마저 앞지르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다. 출산율이라는 게 한번 꺾이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 정책을 펴는 것과는 별도로 저출산 시대에 걸맞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먼저 정년 없는 사회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미 기업들에 70세 정년을 권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종업원이 원할 때까지 일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다. 저출산으로 인한 신규 노동력 부족을 숙련된 고령 근로자로 대체하자는 말이다. 정년 없는 사회는 고령자 연금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부수 효과도 있다.

둘째,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모자이크 사회에 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는 미국은 인구통계학상 독특한 나라다. 선진국이지만 출산율은 2명을 웃돌아 인구 구조에 관한 한 개도국 수준이다. 해마다 100만명가량 받아들이는 이민이 ‘젊은 미국’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우리도 이미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마주치는 것은 일상 다반사가 됐다. 슈퍼볼 최우수선수(MVP) 하인스 워드 효과로 혼혈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현실이 이렇다면 한국을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로 동경하는 외국의 젊은 인재들을 데려다 쓰는 건 어떨까. 일정한 자격과 쿼터를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정식으로 시민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는 얘기다.

이번 기회에 국민연금 민영화 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이뤄지길 바란다. 인구가 줄면 가장 염려되는 게 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다. “약속한 돈 내놓으라”는 아버지 세대와 “왜 짐을 우리한테 떠넘기느냐”는 아들 세대의 충돌이 눈에 보듯 선하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바꿔봤자 미봉책에 불과하다. 세대간 부담 이전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갈등을 피할 길이 없다. 자기 연금은 스스로 알아서 투자하고 관리하는 연금 민영화는 칠레 등에서 성공을 거둔 전례가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인류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라 지레 겁부터 먹는 측면이 있다. 시한폭탄이니 재앙이니 하는 말도 난무한다. 그러나 토머스 맬서스의 ‘허풍’을 떠올려 보자. 그는 일찍이 1798년 ‘인구론’에서 기하급수적 인구폭발로 인류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거꾸로 인구 감소는 곧 망국이라며 호들갑을 떨 건 없다. 인간의 질긴 번식 본능이 어느 순간 되살아날지 모른다. 우리 몸에 익은 생활양식(Modus Vivendi), 즉 단일민족이라는 환상 속에 50대에 은퇴한 뒤 젊은층이 부담하는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겠다는 생각만 바꾸면 저출산·고령화는 극복 가능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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