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연착륙 필요한 부동산거품/최병선 국토연구원장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5.17 14:53

수정 2014.11.06 05:46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에 이른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인간과 같은 탄생과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종교는 영원한 삶을 약속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현세에서 육체로 만들어진 생명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는 게 진리다. 죽음은 반드시 오지만 그것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도 진리에 가깝다. 특히, 오늘날처럼 교통사고, 가스폭발 등 각종 사건·사고가 빈발하는 시대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내일까지 반드시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같은 진리 또는 유사진리는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또 행동한다.
지금까지 무수한 날을 살아왔던 관성과 학습효과가 내일의 존재를 마치 확고한 사실인 양 착색해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인간 본연의 속성이자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진리와 어긋나는 잘못된 행동은 삶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다. 때문에 성인들은 우리에게 하루하루를, 순간순간을 참되게 살라고 충고한다.

요즈음 부동산가격을 놓고 거품 논란이 한창이다. 일부 지역의 비정상인 부동산가격 폭등을 두고 일어나는 논란이다. 어떤 이들은 부동산가격의 거품이 없을 뿐더러 거품은 학문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른바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에 발을 딛고 보면 학문 논쟁에 관계없이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이용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게 분명해 보인다. 대다수 국민의 상식이 그렇고, 또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도 이와 같다. 심지어 외국의 전문가까지도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품을 경고하고 있는 터다.

거품은 생기면 반드시 꺼지는 게 진리에 가깝다. 그러나 이와 같이 진리에 가까운 사실에도 지금은 거품이 아닐 것이라는 희망 섞인 믿음, 혹은 거품일지라도 내일까지는 존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부동산 소유자의 마음을 지배한다. 지금까지 부동산가격이 주저앉았던 적을 본 일이 없는 과거의 경험, 학습효과가 이런 마음을 유발했을 것이다.

정작 거품 붕괴 상황이 도래하면 정부가 대책을 세울 것이라든가,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괜찮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도 이런 마음을 갖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안이한 생각이다. 비상대책이 죽음의 순간을 당분간 연장시킬 수 있을지언정 영생을 약속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부풀어 오른 거품은 결국 꺼지게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의 붕괴는 개인과 사회에 참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우리는 이웃 일본에서 그 생생한 현장을 본다. 일본은 지난 90년까지만 해도 부동산 천국이었다. 매년 두자릿수의 부동산가격 상승률이 수년간 계속됐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일본 땅 일부만 팔아도 미국 땅을 전부 살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수십년간 지속됐던 부동산 호황이 지난 90년을 꼭짓점으로 갑자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후 10여년간 가격 하락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한창 시절의 절반 수준도 안되는 지난 80년대 중반의 부동산가격으로 후퇴했다.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때문에 부동산 소유자는 가격 폭락과 함께 경기 침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요즈음 일본 경제가 다시 회복기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잃어버린 10여년은 되찾을 길이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97년 급작스레 닥친 금융위기로 장기간에 걸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앞으로 더 이상의 금융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위기 발생의 가능성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위기 발생의 한 가능성이 부동산 거품 붕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 달라서 거품 붕괴가 금융권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재산 가치의 80%를 차지하는 부동산 가치가 폭락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거품이 있는데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품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수를 두는 것은 무모하다. 생긴 거품이 꺼질 때까지 키우기보다는 거품이 작은 상태에서 서서히 거품을 빼 연착륙시키는 게 바르고 지혜로운 길이다.
자멸과 공멸을 피하기 위한 모두의 절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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