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오사카 흑녀와 버블논쟁/이장규 증권부장

이장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5.22 15:11

수정 2014.11.06 05:34



‘오사카의 흑녀’라 불리는 오노우에는 지독한 미신 신봉자였다. 그녀는 매주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밤샘 강령회를 갖고 새벽이 되면 신(神)들이 점지해줬다는 주식 종목을 증권사 직원들에게 읊조렸다. 일본 산업은행 총재 등 내로라하는 금융계 인사들이 레스토랑에 드나들었고 증권사의 간부쯤은 자신의 집사인양 부려먹었다. 그녀가 주식에 투자한 돈이 무려 3조엔에 달했기에 그럴 만도 했다.

오사카의 한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사회에 첫 출발한 오노우에가 1조엔의 자산가로 성장한 이력은 이렇다. 건설사 간부의 정부가 된 그녀는 그 남자의 도움으로 2개의 레스토랑을 인수했고 지난 1987년 봄 본격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선다.
이후 그녀는 레스토랑 가치의 2000배가 넘는 3조엔의 돈을 빌려 NTT, 스미모토은행 등에 투자했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주가 때문에 큰 돈을 벌었다. 그녀가 자금을 조달한 방법은 주식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는 식이었다. 이 때가 일본경제의 버블기인 지난 1987∼90년쯤의 일이다.

무속인 김모씨(일명 김보살)가 서울 강남 노른자위 지역의 상가와 아파트 45채를 사들인 과정도 오노우에와 다르지 않다. 김씨는 지난 99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강남구 개포동, 대치동 등의 상가와 주택을 본인 명의와 세 자녀의 이름으로 45채나 사들였다. 구입한 아파트에 근저당권을 최대한 설정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거나 전세를 놓아 조달한 자금으로 다시 아파트를 사들이는 수법을 썼다. 이 과정에서 10개 은행으로부터 134억원을 대출받았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부동산 버블’ 논란이 한창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버블 세븐’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가며 연일 강남의 집값 잡기에 나선 반면 야당은 오히려 정치적 속내를 의심한다. 무엇이든 이분법으로 나누고야 마는 정치구도가 버블이라는 경제적 이슈마저 보수니 진보니 정치적 공방의 틀 안으로 삼킨 점이 아쉽지만 버블 논쟁은 그만큼 어렵고도 민감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사실 버블 논쟁은 자본주의의 역사와 같이 하며 투기냐, 투자냐에서부터 출발한다. 대부분 사람의 눈에는 투기꾼들이 국가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으며 탐욕에 사로잡힌 이기주의자, 욕망의 노예로 비친다. 그러나 투기는 사악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작동시키는 기본원리며 신속한 정보를 시장에 반영하는 파이프라인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기본 작동원리로 삼는 자본주의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기심리는 누구에게나 내재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버블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배하고 해를 끼치는 단계에 이르면 누군가 나서 경고해야 하고 제어해야 한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한국의 부동산이 버블인가, 자원 배분을 왜곡하느냐에 달렸다.

부풀려진 자산가격이 미래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평당 6000만원씩 시가 30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가지고 매년 1000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내면서도 단숨에 억대를 오르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유효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돈을 금융자산(연리 5%)에 넣고 매일 42만원(월 1250만원)씩 꼬박꼬박 받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남의 10억원짜리 아파트에 투자해 전세금 2억5000만원(연수익률 1.25%)을 받느니 국고채(5%)를 사는게 낫다거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금보다 더 높은 값을 주고 기꺼이 이 집을 살 만한 대기 수요가 얼마나 될까.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를 고민하는 나라의 국민 입장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버블은 꺼지기 전에 몇가지 조짐을 보였다. 먼저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선순환구조. 지난 1930년 미국대공황 때나 80년말 일본버블은 ‘증시·부동산 상승-신용창출-소비촉진’의 선순환구조를 자랑할 때 꺼졌다. 또 오만과 불패신화에 대한 믿음이다. 미·일은 자국이 세계 경제를 제패했다고 생각할 때, 또는 주식값이나 집값이 설마 폭락할까 할 때 무너졌다. 시장 참가자 사이에 모럴해저드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위험하다. 몇년 전 벤처거품이 그랬다.

그런 조짐이 나타났을 때 경제관료들이 사전 경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뻥!” 터지는 거품 붕괴보다 “피식∼”하고 바람 빼는 소프트랜딩이 목적이라면 자극적 언어는 피하고 표현은 우회적이어야 한다. 정치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선 청와대나 여당은 가만 있는 게 낫다.
야당도 정치적 해석을 삼가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이 문제는 국가경쟁력 및 민생과 연관된 ‘100% 경제적 이슈’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사카의 흑녀’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지난 91년 오노우에는 3420억엔짜리 위조 양도성 예금증서(CD)를 담보로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체포돼 파산했고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 jkle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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