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금융감독,숲과 나무 모두 봐야/이우철 금융감독원 부원장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6.07 15:13

수정 2014.11.06 04:46



요즘 웬만한 대형 건물에는 자동문이 달려 있다. 그러나 10년, 20년 전만 하더라도 자동문은 귀했고 대부분 손으로 밀거나 당겨서 출입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수동문 가운데 은행 점포의 그것은 유난히 두껍고 묵직했다. 고객불편을 알면서도 은행들이 문을 일부러 무겁게 제작한 것은 문의 중량감을 통해 고객에게 은연중 은행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해서다.

고객은 일반적으로 금융회사가 안전하다는 믿음을 갖고 예금을 한다. 이런 고객의 믿음 덕분에 금융회사는 예금 중 일부만을 인출에 대비하여 현금으로 남겨 둔 채 나머지를 대출 등 수익성 사업에 운용할 수 있다.


금융회사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뢰성 또는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감독은 개별 금융회사의 도산방지 및 예금자(투자자) 보호, 즉 미시건전성(micro-prudential) 감독 위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반드시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지면서 금융시스템에 대한 감독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금융회사는 경기, 금리, 환율 등 거시경제 변수의 움직임에 덩달아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이들 변수와 관련해 금융회사들의 영업행태에 쏠림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경기 침체기에는 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을 회수하는 경향이 있다. 거꾸로 경기 회복기에는 대출을 지나치게 늘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쏠림현상으로 불황기에는 경기가 더욱 침체되고 호황기에는 경기가 과열되는 등 경기 변동폭이 더욱 확대된다.

여기에다 자본자유화 이후 금융회사에 대한 외국인 투자비중이 커지면서 금융회사는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을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익성에 편중된 영업행태는 무분별한 과열경쟁으로 연결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금융회사 나아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 불과 몇 년 전 경험한 신용카드 사태가 그 생생한 사례가 될 것이다. 신용카드 회원 확보를 둘러싼 금융회사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양산되고 가계신용 거품이 발생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바 있다.

또 개별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감독만으로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이유로 급속한 대내외 금융환경 변화를 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금융의 범세계화로 각국 금융시장의 동조화 현상이 심화되고 금융권역 간 장벽이 완화 또는 철폐되고 있으며 다양한 첨단 복합금융 기법이 등장하고 있다. 그 결과 특정 금융회사의 부실이 다른 금융회사로의 번지는 이른바 전염효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금융회사들은 지급결제시스템 등을 통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금융회사의 지급능력 저하는 곧바로 다른 금융회사로 파급되어 결국 전체 금융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개별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만으로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인식한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금융감독의 새로운 방법론인 거시건전성(macro-prudential) 감독이 금융감독 정책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결제은행(BIS) 같은 국제금융기구들도 회원국들에게 거시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감독 당국은 이러한 세계 추세에 발맞춰 감독시스템을 속속 선진화해 나가고 있다. 개별 금융회사의 부실이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시건전성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거시건전성 감독을 통해 금융시스템의 불안요소를 미리 점검하여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거시감독과 미시감독을 조화롭게 그리고 상호보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개별 금융회사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그리고 예금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금융감독 당국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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