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정부는 시장과 소통하라/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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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흐름을 보는 정부와 시장의 눈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금년 우리 경제는 다소 불리한 대외여건 변화 속에서도 5% 수준의 성장과 35만∼40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전망이다.”(재경부가 내놓은 ‘그린북’)

“국내에서는 우리 경제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비관적인 경우가 있다.”(한덕수 부총리, 재경부 간부회의에서)

정부쪽 시각은 한마디로 ‘오버’하지 말라는 거다. 민간은 어떨까.

대한상의가 서울시내 제조업체 300개 회사한테 물었더니 79%가 현 상황을 침체 국면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98.6에 그쳐 기준치 100을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종래 4.9%에서 4.6%로 0.3%포인트 낮춰잡았다.

정부와 기업,즉 시장의 엇박자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언필칭 참여정부에서 기업의 ‘참여’는 실종된지 오래다. 아니, 한가지 예외가 있긴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죄다 모아놓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를 주재할 때 그렇다. 이때만큼은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적극적이다.

노대통령 스스로 기업과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과는 신통찮았다. 지난 3월 대한상의 특강에서 노대통령은 기업인들과 소통을 강조했으나 “로비하러 왔다”는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거리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5·31 지방선거에서 기업인들이 어느 당 후보를 더 많이 찍었는지는 물어보나마나다.

덩달아 경제관료들과 기업인들도 오래 전부터 불통 상태다. 참여정부의 경제 사령탑이 과천이 아니라 청와대에 있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관료들은 청와대 지침에 따라 프로그램을 짜고 정책을 펴 왔다. 이 과정에서 시장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러니 정덕구 의원(열린우리당) 말마따나 “국민들은 시장 근처에 모여 사는데 정부·여당은 산 위에서 홀로 고함만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지방선거가 남긴 교훈은 민심을 외면하면 곧바로 민심의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표에 민감해진 열린우리당은 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누가봐도 좌파 성향이 또렷했던 김근태 신임 당의장은 취임 일성에서 “추가 성장이 있어야 일자리와 복지 문제를 해결할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김의장이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의 시장주의자 이계안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도 신선한 파격이다. 독불장군식 고집 그만 부리고 현장의 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이제 경제 관료들도 달라질 때가 됐다. 청와대가 아니라 시장, 곧 민심을 살펴가며 정책을 펴야 한다. ‘소통불가’ 상태를 대화 모드로 바꿔야 한다. 기업들 대부분이 뼈저리게 느끼는 불경기를 정권만 혼자 아니라고 우기는 독선적인 행태는 이제 접어야 한다.

참여정부의 임기는 앞으로 1년8개월 남았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천냥 빚도 말로 갚는다는데 앞으로나마 기업인과 경제관료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갈 수는 없는 걸까.

“환율하고 기름값 때문에 죽을 맛입니다.
하반기엔 경기가 푹 꺾일거라든데….”

“요즘 기업하기 어려우신 거 잘 압니다. 세계적인 긴축 움직임까지 있어 저희도 걱정이 큽니다. 그렇지만 시장의 소리에 바싹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애로사항은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만사 제쳐놓고 돕겠습니다. 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라는 거, 기업이 살아야 나라도 산다는 거, 삼척동자도 아는 일 아닙니까.”

/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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