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국책사업 갈등,관용의 미덕을/최병선 국토연구원장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7.10 15:16

수정 2014.11.06 03:11



새만금 간척사업, 천성산 터널 문제 등이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되면서 시민사회단체와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던 국책사업들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지난 6월2일 대법원이 “터널공사로 신청인의 환경이익이 침해될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면서 오랜 기간 지연됐던 천성산 터널공사가 재개됐다.

천성산 터널공사 논란은 새만금 간척사업과 마찬가지로 환경단체 등의 강력한 반발에서 시작됐다. 그후 대법원 판결이 있기까지 환경영향평가 재조사 등 4∼5년에 걸친 소모적 갈등과 대립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공사가 지연되면서 소모된 기회 비용이 2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있다. 사업 추진에 관련된 이해 당사자 간에 갈등을 해소하는데 엄청난 사회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과거 환경문제 등으로 표류했던 국책사업들을 살펴보면 갈등의 대부분은 합리성과 객관성을 떠나 서로에 대한 극도의 불신에서 출발했다. 정부는 시민단체를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보고 역으로 시민단체는 정부와 함께 수행한 공동조사 결과조차 수용하지 않고 시위와 단식 농성 등을 통해 그들의 이해와 신념을 관철시키려 했다. 지난해 초 지율스님의 100일간 단식농성은 이 같은 상호 불신의 결정판이었다.

지율스님은 국책사업의 추진 과정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했고 정부는 법과 기술을 뛰어넘는 환경과 생명가치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했다. 양자 모두에게 ‘톨레랑스(관용)’가 요구되는 대목이었다. 톨레랑스는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통해 다져진 공존의 원칙으로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종교, 사상, 신념을 용인함으로써 공존을 가능케 하는 덕목이다. 톨레랑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함으로써 사회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극단적 신념과 표현이 행동화될 경우, 공공이익 보호를 위해 법률에 의한 제한이 불가피하고 이것은 사회적으로 폭넓게 용인된다.

프랑스는 1789년 시민혁명을 통해 톨레랑스를 사회적 가치로 정립한 바 있고 이에 따라 국가와 공공이익의 결정에 있어 톨레랑스가 보편화됐다. 예를 들면 해마다 벌어지는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서 각자의 파업 권리를 인정하고 불편을 감수한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데도 지난 2004년 11월7일 반핵 관련 환경단체회원이 핵 폐기물의 철도 수송에 반대하기 위해 철도에 누워 시위하다가 기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회적 이슈로 인식하지 않는다.

국토의 25%가 해수면 아래에 위치한 네덜란드 역시 아주 오래 전부터 공공의 이익을 위한 톨레랑스가 그 사회의 기본가치로 확립돼 있다. 물로부터 생존하는 게 국민의 공통목표였기 때문에 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둑을 쌓아 올리는 것은 그 어떤 개인의 가치와 이익보다 중요시됐고 그 과정에서 톨레랑스를 바탕으로 ‘견제와 균형의 문화’ ‘타협과 협상체계’를 통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는 사회적 합의형성 모델(소위 간척지 모델)을 확립했다. 그들은 이렇게 톨레랑스를 바탕으로 하는 국민참여절차(PKB)를 통해 스키폴공항, 로테르담 항만개발, 남부고속철사업(HSL-Zuid) 등 국책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했다.

우리나라는 톨레랑스와 같은 사회적 용인과 합의 형성의 전통을 갖추지 못한 가운데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돼 사회 현장에서 빈발하는 갈등을 통합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정부의 탈권위화가 진행되고 있어 정부의 법적 권한과 리더십만으로 복잡다기한 사회 난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정부와 시민 간에 다양한 참여와 소통의 통로를 마련해 상호신뢰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지된 갈등과 잠재 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는 사회적 합의형성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할 수많은 사회적 의제, 또는 주요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그대로 두고는 선진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정부와 시민사이에 불신을 키우며 모든 정책적 판단을 사법부의 결정에 의존하는 방식은 이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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