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M&A,우리라고 못할쏘냐/곽인찬 논설위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7.11 15:16

수정 2014.11.06 03:07



서울 여의도에 유명한 콩국수 집이 한 군데 있다. 점심 시간 30분 전에 가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힘들다. 원래 스무평 남짓한 가게였는데 어느날 가보니 앞가게를 터서 공간을 두배로 늘려놨다. 그래도 가게를 빙 둘러 늘어선 줄이 줄지 않았다. 결국 올해는 옆가게까지 터서 공간을 예전의 세배로 키웠다. 그런데도 여전히 북적거린다.


이를테면 이 콩국수 집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앞으로, 옆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콩국수에 관한 한 여의도에서 이 집의 기세를 꺾기는 당분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일개 식당도 M&A를 통한 세력 확장에 적극 나서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대기업들은 M&A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자서전에 뿌리 깊은 반(反) M&A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 하나만 예외로 하고 우리는 모든 산하 기업을 우리 손으로 하나 하나 기초공사에서부터 일일이 공장을 지어 일으켰다…시장 확대 역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해 왔다.”(‘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회장에게 인천제철 인수는 부끄러운 일이고 치열한 경쟁만이 정정당당한 일이었다. 정회장이 인수합병에 능했던 모 재벌 회장을 탐탁잖게 여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정회장이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70∼80년대에는 기업의 자력갱생 전략이 유효했다. 인수를 하고 싶어도 마땅한 ‘물건’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세상이 달라졌다. 세계화 시대엔 기술 못지않게 덩치도 중요하다. 선진국 기업들 간에 합종연횡 붐이 일었다.

회사 이름에 M&A 열풍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세계 최대 제약업체로 꼽히는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GlaxoSmithKline)’, 세계 최대 투자은행 ‘JP모건 체이스’ 속에는 몇 개 회사의 이름이 녹아 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자동차), 로열 더치 셸(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긴 회사들은 대개 M&A가 잉태한 기업들이다. 머지않아 ‘르노 닛산 제너럴 모터스(GM)’가 태어날지도 모른다.

자기네끼리 짝짓기를 마무리한 선진국 기업들이 슬슬 신흥시장, 특히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M&A는 인수 즉시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국적기업들엔 효과 만점의 경영전략이다. 2위 아르셀로까지 먹어치운 철강 공룡 미탈스틸이 포스코에 눈독을 들이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후진국’ 중국의 대응이다. 중국은 넘치는 달러를 앞세워 이른바 쩌우추취(走出去·해외진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선진국 기업에 역 M&A 공세로 당당히 맞서고 있다. 쌍용자동차 인수는 그 중 하나다.

지금처럼 가만히 있다간 선진국 기업은 물론 중국 기업에도 속절없이 당하기 십상이다. 소버린과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을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그들의 테크닉을 배워야 한다. 왜 우리 기업들은 M&A 얘기만 나오면 작아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기껏 정부에 요구하는 게 황금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거다. 쳐들어오면 막겠다는 의도다. 그래서는 소버린에 지불한 ‘수업료’ 수천억원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우리 기업도 원화 강세를 무기로 해외 M&A 무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일본이 80∼90년대 엔고(高) 때 록펠러센터, 컬럼비아영화사 등 미국의 심장부를 공략했던 전례에서 배울 바가 적지 않다.

정주영 회장이 현장을 뛸 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척정신이 중요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엔 남이 가진 유형, 무형의 자산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도 경영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 됐다. 누구보다 경영 감각이 탁월했던 정회장이 지금 살아 있다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M&A 돌격전을 펼치지 않았을까.

/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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