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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노동당 정부의 패착/송경재 뉴질랜드 특파원

장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8.03 04:26

수정 2014.11.06 01:41



“1주일에 40시간 일하는 내가 번 돈보다 직장 없이 아이들만 둘 키우는 내 사촌이 받는 복지수당이 더 많아요. 나도 애나 낳아볼까 해요.”(페트리나 마시)

“연소득 2만5000∼3만 뉴질랜드달러(약 1500만∼1800만원) 수준의 저소득층 가운데 돈 벌기 위해 본업 외에 과일 따기, 청소 등 몇 가지 일을 더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금을 내고 나면 이런 노력이 다 헛수고로 끝나버려요.”(페니 미첼·복지담당 공무원)

뉴질랜드 유력 일간지인 뉴질랜드 헤럴드의 지난달 르포 기사에서 쏟아져 나온 푸념들이다.

‘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진 뉴질랜드가 지나치게 높은 세금과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복지정책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 사이에는 “일해서 세금으로 다 빼앗기느니 차라리 실업자로 남아 실업수당을 받는 게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단돈 1달러라도 급여를 받으면 20%가 넘는 고율의 소득세율을 적용받아 세금을 내야 하는 터라 일을 하느니 차라리 복지수당을 받으며 실업자로 남는 게 더 낫다는 얘기다.

연소득이 3만8000 뉴질랜드달러(약 2280만원) 이하 근로자는 20.8%, 6만 뉴질랜드달러 소득까지는 34.3%, 연간 6만 뉴질랜드달러가 넘는 소득을 올리면 40%를 웃도는 소득세를 내야 한다.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일 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면세점은 아예 없다.
뉴질랜드 정부가 세원을 넓혀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 채택한 제도다.

복지정책과 이를 위한 재원 마련 수단인 세제는 지난 99년 11월 노동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변화를 겪었다.

지난 90년 말 보수당인 국민당에 정권을 내준 지 거의 10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 노동당은 헬렌 클라크 총리를 앞세워 저소득층과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 3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최저임금을 시간당 9.0 뉴질랜드달러에서 10.25 뉴질랜드달러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돼 가고 있다. 생활형편이 그나마 나은 이들도 삶이 고단해지기는 마찬가지다.

경제활동 가능인구 가운데 실제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일을 하고 있거나 취업할 의사가 있는 이들의 비율을 나타내는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난 90년대 초반 64% 수준에서 꾸준히 올라 올해는 68%가 넘는 것으로 뉴질랜드 통계청은 분석하고 있다. 이전에는 집에서 쉬던 이들이 팍팍한 살림 탓에 돈벌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4분기 경제활동 참가율은 68.5%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75.2%에서 17년 만에 최고 수준인 75.6%로 높아졌고 여성의 경우 61.0%에서 61.9%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동당 정부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성장과 소득증가를 억눌러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야당인 국민당은 최근 호주가 매력적인 세제로 자국의 고급 인력을 빼가고 있다며 노동당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당 존 키 의원은 호주 근로자들의 연간 세후 소득 평균이 4만4700 뉴질랜드달러인데 비해 뉴질랜드 근로자들의 연간 세전 소득 평균은 4만2600 뉴질랜드달러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태즈만해를 가로질러 호주로 이주하는 뉴질랜드 국민들이 늘어 매주 650명에 이르고 있다”며 “정부의 재정운용은 경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이후 경제성장률이 눈에 띄게 둔화된 탓에 기업들의 고용 여력이 크게 줄면서 일자리 불안감도 높이고 있다.

ANZ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경기 둔화가 가시화하면서 지난 6월 구인광고를 토대로 한 기업들의 숙련직 근로자 충원 규모가 지난해 6월에 비해 7% 줄었다.


결국 복지수당에 매달리는 뉴질랜드인들이 늘고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 마련 때문에 세율을 낮출 수도 없는 악순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dympna@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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