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정주영,야성적 충동의 화신/곽인찬 논설위원



정주영의 야성적 충동(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천생 농사꾼 아버지의 끈질긴 만류에도 불구하고 네번씩이나 가출을 할 때부터 야성의 싹이 엿보였다. 세번째 가출 때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소 팔아서 모은 돈 70원을 훔치는 대담함도 드러냈다. 농사꾼 자식으로 남기를 간절히 원했던 아버지는 결국 장남의 습관성 가출에 두 손을 들고 만다.

소년 정주영이 뱃사공에게 뺨을 맞은 일도 있었다. 두번째 가출해서 작은할아버지 집을 찾아갈 때의 일이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친구는 “뱃사공 아저씨한테 사정해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정주영은 “아무 소리 말고 나만 따라오라”고 했다. 배가 건너편 강 기슭에 닿자 뱃사공이 투박한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미안해요. 우리는 돈이 한 푼도 없어요.”

“뭐야? 이 놈의 자식. 돈도 없이 배는 왜 타!”

뱃사공의 호통과 따귀가 동시에 날아왔다. 이어 친구도 따귀를 얻어맞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이때 정주영의 말이 걸작이다.

“따귀 한 대로 배 삯 치렀으니 싸게 쳤다. 하하하.”

사업에서도 정주영의 야성은 종횡무진, 거칠 것이 없다. 해방 직후 적산 대지를 불하받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차린 정주영은 자동차 수리 대금을 받으러 관청에 갔다가 눈이 휘둥그레질 장면을 목격한다. 자기는 몇 백원 밖에 받지 못하는데 토건업자들은 몇 천원씩 받아가는 것이었다. 정주영은 당장에 ‘현대토건사’를 차렸다.

이성적인 동업자들은 극구 반대했다. 생소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까딱 잘못하다간 자동차에서 번 돈을 홀랑 들어먹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달랐다. 공사판 막노동 경험이 있으니 토건업이 생소한 분야도 아니다. 견적 내서 계약 따고 수리해서 돈 받는 게 자동차나 건설이나 무어 다를 게 있단 말인가. 이렇게 해서 오늘날 현대의 두 뿌리,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현대토건사’가 탄생한다.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든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외에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단 1%도 갖지 않는다.”(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울산에 조선소를 지을 때도 정주영 편에 선 사람은 없었다. 몇백 톤짜리 나무배나 만들던 나라에서, 더구나 건설만 하던 현대가 어떻게 대양을 항해하는 수십만톤 짜리 대형 유조선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정주영은 이성적 판단을 일축했다. 조선이라는 게 철판 잘라 용접하고 엔진 올려놓는 일인데 바로 건설현장에서 하던 일이 아닌가. 도크는 배가 들어가는 엄청나게 큰 수영장일 뿐이다. 그는 스스로의 야성을 믿었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영국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로 상대방을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한 얘기다.

오늘날 현대중공업은 세계 선박수주 1위 자리를 단단히 움켜쥔 초일류 회사로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정주영의 야성이 빚어낸 걸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업인들에게 야성적 충동을 주문했다. 위험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달라는 것이다. 그러자 출자총액제한제와 반기업 정서 따위를 내세우며 “투자할 분위기나 제대로 만들어 달라”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일리 있는 항변이다. 기업과 기업인, 그들이 창출하는 이익을 죄악시하는 분위기에서 누가 일할 맛이 나겠는가.

그러나 정주영이라면 어땠을까.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그래도 없으면 새 길을 개척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면서 그냥 주저앉을 인물이 아니다. 진정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