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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흰 구름의 나라’의 ‘먹구름’/송경재 오클랜드 특파원

장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9.07 15:40

수정 2014.11.05 12:36



아오테아로아(Aotearoa).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말로 ‘길고 흰 구름의 땅(나라)’이라는 뜻이다.

뉴질랜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이 희고 긴 구름과 녹색으로 덮인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양떼다. 이런 이미지는 뉴질랜드 경제에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농산물로 채우고 있기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이미지가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05회계연도(2004년 7월∼2005년 6월) 전체 수출액 잠정치는 294억7000만뉴질랜드달러(약 17조7000억원), 이 가운데 농산물은 165억6000만뉴질랜드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56.2%에 이른다.

뉴질랜드 정부도 강조하고 있듯 뉴질랜드는 이런 친환경 이미지를 앞세워 세계 농산물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간 지속된 고유가로 인해 엉뚱하게도 뉴질랜드에 불똥이 튀었다. 유럽의 환경론자들은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 농산물을 먹는 것은 환경에 해를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른바 ‘식료품 이동거리(Food Miles)’ 캠페인이 뉴질랜드 농산물의 친환경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국과 유럽은 미국에 이어 뉴질랜드에는 두 번째로 큰 농산물 수출시장이어서 충격파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아오테아로아에(흰 구름의 나라)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들고 있다.

푸드 마일스는 야채, 과일, 고기, 유제품 등 먹을거리가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긴 거리를 이동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이동 거리가 멀다는 것은 제품 이동을 위해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것으로 그만큼 환경에 이롭지 못하고 제품의 질도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푸드 마일스 캠페인은 이 때문에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가장 좋다는 ‘신토불이’식 캠페인으로 전개됐고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지구 반대편 남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가 타깃으로 떠오른 것이다.

뉴질랜드 헤럴드지에 따르면 영국의 친환경론자들은 소비자들을 상대로 “뉴질랜드처럼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수입한 농산물을 먹는 것은 운송에 들어간 연료를 감안할 때 석유를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영국 유제품 업체인 ‘데어리 크레스트’는 지난 7월 1800만뉴질랜드달러를 들여 경쟁 제품인 뉴질랜드산 버터를 비난하는 광고를 시작했다.

뉴질랜드 폰테라사의 대표 브랜드인 ‘앵커’ 버터가 영국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1만7700㎞를 이동하기 때문에 그만큼 신선도와 같은 품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푸드 마일스 캠페인은 유럽 곳곳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전세계는 온난화와 관련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인류 문명은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담긴 ‘가이아의 복수(The Revenge of Gaia)’라는 책이 폭염에 시달리는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식을 남기면서 푸드 마일스 캠페인이 위력을 발휘할 태세라는 것이다.

유럽의 환경론자들은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천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뉴질랜드산 과일과 육류를 예로 들며 가까운 지역에서 만들어진 농산물이 환경보호에 더 이롭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영국과 유럽의 푸드 마일스 캠페인을 ‘비관세 장벽’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의 민간 농업연구소인 에이지리서치(AgResearch)의 수석 과학 전략가인 스티븐 골드슨은 “이 캠페인은 뉴질랜드 최대 농산물 수출시장인 북반구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뉴질랜드의 농산물 수출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질랜드 농무장관 짐 앤더튼도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해외시장에서 뉴질랜드 농산물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변화에 극히 인색한 뉴질랜드가 과연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반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물리적 제약 자체 및 변화와는 담을 쌓고 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가 더딘 뉴질랜드가 신속한 해결책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오클랜드(뉴질랜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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