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청와대의 우상’을 경계한다/임관호 산업2부장

지령 5000호 이벤트


울릉도에 가면 해발 984m 높이의 명산 성인봉이 특유의 넉넉함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예부터 울릉도는 혼자 된 여인네가 살기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뭍에서 상부했거나 홀로 된 여인네가 몸을 의탁했던 곳이 울릉도다. 여인의 몸이지만 열심히 일만 한다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이다. 울릉도 성인봉은 그런 곳이다. 갖은 약초가 자생하고 있어 누구든지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저축까지 하면서 미래를 다시 계획할 수 있는 희망의 섬이다.

왜 느닷없이 울릉도 타령이냐고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할 정도로 풍성한 명절, 추석이 보름여를 남겨놓고 있다. 동네마다 대목 명절을 놓치지 않겠다고 부산하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인도는 좌판 행상으로 빼곡하다. 도로는 선물꾸러미 배송 차량으로 막히고 도심 큰 재래시장에는 수레꾼이 아닌 오토바이 배달꾼으로 번잡하다. 그래도 이런 풍경은 희망을 준다.

추석은 대목이다. 내수경기가 그나마 반짝하는 중요한 명절이다. 내수시장에 목을 매고 있는 업종들은 이런 대목 때 매출을 많이 올려놔야 한해의 걱정이 준다. 그만큼 대목 명절은 민생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하지만 추석경기가 여전히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최악의 추석경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내수경기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었던 노숙자 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지난해와 다른 것은 여성 노숙자의 모습마저 자주 눈에 띈다는 것이다. 저임금의 해외동포 여성들에게 떠밀려 일자리마저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기 논쟁은 10년째 지속되고 있다. 심각한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으면 그뿐인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호불황의 차이는 그리 심각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청와대의 경제 바로미터는 주식시장밖에 없는 것 같다. 다른 경제지표들이 형편없이 돌아가니 당연히 주식시장이 최고의 경제 척도일 것이다. 주가지수가 증시 역사상 최고인 1300대를 달리고 있으니 일리는 있다. 주식시장은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맹신은 금물, 경제와는 상관없이 돈의 힘만으로도 주가는 올라갈 수 있다. 풍부한 유동성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투자처를 못찾고 떠돌아다니는 유동성은 경제의 독이 될 수 있다.

기업들의 현금 금고는 차고 넘친다. 그렇지만 기업의 설비투자가 활발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 할 정도다. 미래에 대한 투자가 멈춰있다.

1년5개월의 임기를 남겨놓은 노무현 대통령이 33개국째의 해외순방을 마쳤다. 역시 이번 순방에서도 노대통령은 ‘해외에서 기업을 칭찬해주는 대통령’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영부인과 함께 ‘관광사진’도 찍었다. 오랜만에 보는 대통령의 관광사진이다. ‘세일즈 외교’에 바쁘신 틈에도 ‘문화체험’까지 하시려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걱정이 앞선다.

또 한편으로 지난 수해로 추석 시름이 가득할 수해지역 주민들도 떠오른다. 지난 방학 때 찢어진 딸내미의 교복을 새 옷으로 사주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환율을 걱정하며 지난해 수출계약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납품해야 하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님의 깊은 한숨도 되새겨진다.

언제부터인가 청와대 담장이 높아졌다는 얘기가 많다. 상의 하달식의 의사전달은 활발한 것 같은데 하의 상향식은 막혀있는 듯하다. 경제 현실들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는데 ‘청와대 인사’는 여전히 시끄럽다. ‘바다이야기’ 광풍에 온국민이 사기당한 기분인데 시원한 해소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언로가 언로처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추석이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동굴의 우상’의 우(愚)를 청와대가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증오와 내침’이 아닌 ‘사랑과 관용’을 이야기한 링컨처럼 지금의 청와대가 경제에도 초심과 평상심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어느 해보다 쓸쓸해질지 모를 요즈음, 서울역과 을지로입구역의 새벽 풍경을 한번쯤은 돌아보는 청와대가 됐으면 한다. 경제는 민심이다. 가계와 기업에게 ‘밥 퍼주는 대통령’이 필요한 때다.

/limgh@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