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은행-증권,‘지급결제’ 빅딜을/이장규 증권부장


올해 초, 사석에서 만난 한 은행장이 이런 말을 했다. "도대체 금융연구원은 뭐하는 기관인지 모르겠어. 은행 돈으로 운영되는 연구기관이면 은행의 이익을 대변해야지, 딴 데에 신경이 팔려서 말야."

대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얘기를 증권사 사장에게도 들었다. "증권연구원이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조금 약한 것 같아. 결국 (금융연구원에) 밀리는 것 아니야?"

이런 이해 관계자의 압력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반영된 것일까. 우리나라 금융의 두 싱크탱크, 금융연구원과 증권연구원이 정면충돌했다. 올 정기국회에 제출될 자본시장 통합법을 놓고 보고서·기자회견 등 공식경로는 물론 비공식 간담회와 기고 등을 통해 몇 달째 사생결단하듯 맞붙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금융결제원의 소액결제시스템에 증권사의 참여를 허용하느냐' 여부.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그동안 개별 약정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결제서비스를 제공해 온 증권사는 금융결제원의 은행공동망에 직접 가입해 은행예금에 비해 높은 이자에다 거래편의성까지 갖춘 경쟁력 있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고객은 증권사 계좌를 월급계좌로 지정하고 종전보다 훨씬 저렴한 수수료로 자금인출·송금 등 은행 예금업무 일부를 볼 수 있다.

논란의 이면에는 향후 금융산업 주도권 경쟁이 숨겨져 있다.

증권연구원은 경제가 도약하기 위해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모험산업의 성장이 필요하며 이 산업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선 위험을 떠안을 수 있는 자본시장의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가계자금을 자본시장에 유입할 유인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증권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연구원은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면 결제 불이행의 위험이 높아질 뿐 아니라 사실상 예금업무를 인정하는 꼴이 돼 증권사에 은행업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금산분리 정책에도 위배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금융의 중심축이 은행에서 자본시장으로 옮겨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담겨 있다.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할 묘수는 없는 것일까. 어떤 방안이 금융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지, 소비자의 편의를 높일지가 잣대가 돼야 하지만 구체적으론 먼저 은행이 맏형답게 열린 자세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은행은 결제기능 독점을 무기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은행은 외국계 자본이든, 증권사·보험사든 어느 누구와도 경쟁할 자세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게다가 은행을 축으로 한 금융지주사의 경영목표가 증권 등 비은행계열사의 육성을 통한 균형발전 아니었던가. 자본시장의 발전이 오히려 은행과 금융지주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최근 금융업권간 칸막이가 낮춰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시장의 힘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이참에 지급결제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소액결제와 증권결제간에 빅딜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현재 소액결제는 금융결제원, 증권결제는 증권예탁결제원이 담당하고 있다. 비현금 지급수단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파생상품의 급팽창으로 각종 거래의 청산·결제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나눠먹기식 현재의 결제구도에 안주해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기보다 두 결제원의 지분을 서로가 교차 소유하는 게 상생하는 방법은 아닐까.

때마침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증권선물거래소가 증권예탁결제원 지분을 50% 이하로 낮추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지분율 25%에 해당되는 이 주식을 은행권에 넘겨 은행이 증권결제기관의 주주가 되고 증권사는 소액결제기관에 회원으로 참가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교차 보유하게 되는 지분가치에 대한 차액만 정산하면 가격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은행과 증권의 더불어 살아가기'는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닐까. 금융연구원과 증권연구원이 업계 이익만을 대변하는 논리 제공자의 한계를 벗어나 공동공청회 등을 통해 금융산업의 장기 발전방안을 놓고 서로 머리를 맞대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jkle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