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저출산 삐딱하게 보기/곽인찬 논설위원


추석을 앞두고 전국 대이동이 시작됐다. 곳곳에서 길이 막히는 연례행사가 되풀이될 게 틀림없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고향 오가는 길이 시원하게 뻥 뚫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보다 한결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텐데.

가만,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니 잘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뜻에서 인구 좀 주는 게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닌 듯 싶다.

그런데 대놓고 “인구 좀 줄면 어때”라고 말했다간 비애국자로 지탄받는 시대가 됐다. 온 나라가 출산율을 끌어올리려고 난리다. 출산에 관한 한 어느덧 다다익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됐다.

인구 감소라는 시한폭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걸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저출산은 호들갑을 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풍부한 노동력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건 왕년의 한국 경제가 증명한다. 1970∼80년대 10% 안팎의 고속성장은 베이비 부머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밑거름이 됐다. 섬유·신발 공장에서 노동력 투입은 곧바로 생산 증가로 이어졌다. 지금 중국과 인도 경제가 바로 20∼30년 전 한국의 모습이다.

저개발 단계에서는 이같은 주장이 타당하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너무 빨리 발전했다. 그 결과 선진국형 ‘고용 없는 성장’이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정보기술(IT) 산업은 천재 한 사람이 수만, 수십만명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다. 노동력보다 머리에 더 의존한다. 노동력 감소가 반드시 성장력 저하로 연결된다고 단정하기가 힘들게 됐다는 뜻이다.

돈으로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책도 효과가 의문시된다. 정부가 부담하기에는 큰 돈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푼 돈이다. 돈을 써서 출산율이 쑥 올라가기를 기대하는 건 과욕이다.

출산억제 정책이 성공했으니 출산장려 정책도 성공할 거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가족계획이 정부 개입으로 성공했다고 판단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저출산은 근본적으로 수십년에 걸친 시대 변화의 산물이다. 가족계획은 부수적인 역할만 했을 뿐이다. 정부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쳐서 저출산국이 된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에 저출산국이 됐다고 말하는 게 옳다.

경제학적으로 냉정하게 말하면 아이는 과거 투자재(財)에서 사치재로 바뀌었다. 부모가 자식들을 키우고(투자), 나중에 자식들의 봉양을 받는(수익) 시대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대신 딸·아들 구별 없이 비싼 돈 들여 대학에 보내야 하고 노후는 각자 알아서 챙겨야 한다. 투자해 봤자 수익을 기대할 게 없다. 이같은 시대 변화가 출산율 1.08명이라는 수치에 담겨 있다. 돈은 돈대로 들고 실익은 별로인 사치재가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저출산 극복의 해법은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아이가 투자재로서의 가치를 회복하면 낳지 말라고 해도 낳는다. 언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지는 솔직히 예측하기 어렵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전인미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연 초 저출산 인구구조를 “인류의 황금시대를 알리는 전조로 축하해야 한다”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신기술 개발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더 적은 인원이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으니 그것이 곧 황금시대 아니냐는 논리다.
한마디로 인구 좀 준다고 경악할 건 없다는 얘기다.

추석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슬쩍 말을 꺼내보자. 저출산 극복을 위해 예산, 즉 세금을 쏟아붓는 것이 타당한지 말이다. 아동수당 주면 아이 더 낳겠는지도 물어보자.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하겠다. “괜히 헛돈 쓰지 말고 그 돈을 재택근무 시스템 개발에 투입하라.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도 육성하고 맞벌이 부부한테도 환영 받을 테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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