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시카고 부자,강남 부자/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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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기성세대가 보기에 좀 불온했다. 그는 자기가 낸 세금이 노예제를 유지하고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는 데 쓰이는 걸 용납할 수 없다며 납세를 거부했다.

소로가 스물여덟살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그는 랠프 에머슨 소유의 한적한 땅에 손수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어느날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세금 징수원과 마주쳤다. 징수원은 소로에게 밀린 인두세 6년치를 내라고 다그쳤다. 소로는 노예제와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에 세금을 낼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소로는 감옥에 갇혔으나 숙모가 그의 항의를 묵살하고 세금을 대납한 덕에 하루 만에 풀려났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가 저 유명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다.

조세저항은 시민불복종의 방편
소로는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훌륭한 정부”라는 어록을 남겼다. “어떤 바보라도 규칙을 만들 수 있고 어떤 바보라도 그 규칙을 따를 것”이라는 말은 정부의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에 순종하는 선남선녀들을 비꼬는 말로 들린다. 부당한 국가 권력에 과감히 맞서라는 소로의 시민 불복종 사상은 마하트마 간디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던 간디는 1930년 이른바 ‘소금 대장정’에 나선다. 영국이 독점적으로 생산, 공급하던 소금에 대한 세금 거부가 주된 목적이었다. 25일 동안 380㎞를 걸어 뭄바이 위쪽 해안도시 단디에 도착한 간디는 소금을 움켜쥐고 “이 소금으로 나는 대영제국의 기초를 뒤흔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경찰은 간디를 무허가 소금제조 혐의로 체포하지만 비폭력 조세저항으로 독립을 쟁취하려는 인도인들의 열망은 꺾을 수가 없었다.

노예제나 전쟁 반대 또는 독립운동과 같은 거창한 목적은 아니지만 과다한 재산세를 이유로 부동산 부자들이 조직적인 저항에 나선 예가 미국에 있다.

1930년 미국 경제는 대공황의 수렁에 빠졌다. 지방정부들은 부동산 세금을 대폭 올려 모자라는 세원을 충당했다. 그러자 미국 전역에 걸쳐 조세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의 부동산 소유주들이 가장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부동산납세자협회(ARET·Association of Real Estate Taxpayers)’를 결성, 세율 인하와 정부의 지출 축소를 요구했다. 회원들은 연회비로 15달러를 냈고 회비는 위헌소송을 내는 데 쓰였다.

부자들 세금파업 한·미 닮은꼴
1931년 ARET는 회원들에게 일리노이주 대법원과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세금파업(Tax Strike)에 돌입할 것을 지시한다. 시카고시 정부는 형사 처벌을 경고하며 으름장을 놨으나 소용이 없었다. 시 정부는 교사 급료의 지급을 미루고 공공 서비스를 단축해야 할 지경이었다. 조세저항이 절정에 이른 1932년 ARET는 회원 수가 3만명을 헤아렸고 예산은 60만달러를 넘어섰으며 자체 라디오 쇼도 내보낼 정도의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이 소송 자체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린 직후 ARET의 위세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내부 파벌 싸움에다 경제가 대공황의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기지개를 켠 것도 ARET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결국 세금 파업은 1933년 초 막을 내린다.

서울 강남·목동과 경기도 분당 등 ‘버블 세븐’ 지역 주민들이 종합부동산세에 항의하며 조직적인 조세저항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부자들의 반발이란 점에서 ARET 사례와 닮은 구석이 있다. 위헌 소송을 내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세금 파업을 벌이려는 것도 비슷하다. 미 연방대법원은 소송을 기각했는데 곧 새 수장을 맞게 될 우리 헌법재판소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