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중앙은행 수난시대/곽인찬 논설위원



한은은 왜 그때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렸을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쇼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헛다리를 짚은 걸까.

지난 9일 금통위 전후의 상황을 살펴보자. 그 이틀 전 미국 중앙은행(FRB)은 금리를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한은 역시 금리를 묶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한은은 과잉 유동성을 잡는 게 더 급하다며 금리를 올렸다. 불행히도 그 직후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 날 FRB와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은 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확대했다. 유동성이 뭔가. 시중에 풀린 돈이다. 서브프라임 쇼크의 여파로 시중에 돈줄이 마르는 신용경색이 나타날까봐 취한 조치다. 결국 한은은 국제 금융시장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은 셈이다.

주가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자 재경부·한은 당국자들이 부랴부랴 만나 여차하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한은으로서는 참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금리 올려 돈줄 조이겠다고 한 게 엊그제인데 거꾸로 돈을 풀 수도 있다고 입장을 180도 바꿨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한은이 허투루 금리인상 결정을 내린 건 아니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비롯해 나라 안팎의 여러 변수를 이모저모 따졌다. 금통위 직후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 금융시장이 최근 불안해졌다…그러나 유동성 증가 추세가 바뀌지 않고 있다…현 시점에서 콜금리를 한 번 더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한은이 서브프라임 부실을 과소평가했다는 데 있다. 시장이 이렇게 요동칠 줄은 미처 몰랐을 거다. 이래서는 외환위기의 교훈이 무색하다.

정부와 한은은 지난 99년 국제금융센터(IFC)를 출범시켰다. “국제 금융시장을 밀착 감시하고 대응책을 정부에 적기에 보고해 외환위기 재발을 방지한다”는 게 설립 목적이었다. “외국 금융기관과 전방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고급 정보소스를 확보한다”는 운영 방침도 세웠다. 그 결과가 한은의 엇박자 금리인상이라니 씁쓸하다.

하긴 한은만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니다. 벤 버냉키 FRB 의장 역시 서브프라임 부실에 늑장 대처하다 화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리를 동결하자마자 허둥지둥 시중에 돈을 풀고 급기야 재할인율까지 내린 걸 두고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럴 거면 왜 금리를 동결했느냐는 거다.

사실 금리정책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누가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FRB이든 한은이든 이번에 헛다리를 짚은 것만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한은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금리를 ‘이례적으로’ 두 달 내리 올렸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다만 딱 한 명 죄를 뒤집어 씌울 사람은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다. 그는 9·11 사태 이후 전 지구적인 저금리 기조를 주도했다. 그 덕에 세계 경제는 기사회생했으나 돈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뿌려졌다. 그 설거지를 지금 버냉키 의장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금리인상은 늘 악역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성태 총재 역시 우리 몫의 설거지를 하려다 시장에 발목이 잡힌 꼴이다. 최근 사태와 관련, 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신용 버블 붕괴를 야기한 사람들은 타인의 돈을 굴리면서 그릇된 대박 약속으로 자기 주머니만 채운 사람들이다…중앙은행이 위기 때마다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있는 한 금융버블은 계속된다.” 곱씹어 볼 만하지 않은가.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