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말(言)의 정치학/곽인찬 논설위원



어떤 사람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일까. 짧게 끝내는 사람이다. 결혼식 주례사를 떠올려 보자. 아무리 멋진 주례사라도 10분을 넘기면 하객들이 슬슬 몸을 꼬기 시작한다. 15분을 넘기면 하품이 나오기 시작하고 20분을 넘기면 은근히 눈초리가 올라간다. 주례가 “끝으로” “마지막으로”를 서너번 되풀이할 때쯤이면 구시렁 구시렁 낮지만 강한 불평이 터져나온다.

짧다고 다 말 잘하는 건 아니다. 촌철살인, 최소한 한 가지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적당한 유머는 양념이다. 내용도 없이 딱딱하게 짧으면 그만큼 싱거운 것도 없다.

목소리도 중요하다. 특히 남자의 경우 콧소리 섞인 고음보다는 밑으로 깔리는 듯한 저음이 좋다. 목소리는 신뢰와 연결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고공에서 밍밍거리는 소리는 신뢰가 덜 간다. 타고난 목소리를 어떻게 바꾸느냐고? 말로 먹고 사는 성우, 배우, 정치인 등은 후천적으로 손을 보는 게 좋다.

같은 맥락에서 말 잘하는 사람은 비속어의 사용을 최대한 삼간다. 한 번 정도 우스갯소리로 하는 거라면 모를까 비속어 남용은 말의 품격에 치명적이다. 신뢰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종종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말 잘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말이 너무 길다. 얼마 전 PD연합회 축사는 당초 15분 예정에서 54분으로 길어졌다. 이 때 노 대통령은 “세상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기자들은 쓸 수 없다. PD라야 이런 긴 얘기를 담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앞뒤 맥락 툭 끊어버리고 튀는 말만 기사화하는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물씬 묻어난다. 그러나 어쩌랴, 기자들은 천생 지면의 제약 속에서 살아간다. 구구절절이 다 기사화할 수는 없다. 이러니 대통령과 기자들 간에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정권 초기부터 기자들은 “우리가 무슨 속기사냐”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감을 앞두고 원고지 수십장 분량을 쉴새 없이 받아 적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걸 빨리 정리해서 원고를 넘겨야 한다. 자극적인 비속어 부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튿날 대통령은 거두절미식 보도에 분통을 터뜨린다. 이런 일이 5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은 노 대통령의 화법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특히 길이와 비속어 사용에서 그렇다. 화법만 잘 관리해도 큰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도 말이 만만찮게 길다는 얘기가 들린다. 당 사무처 직원들과 첫 오찬 때 ‘간단한 인사말’이 원고지 20장 분량이었다고 한다. 음식이 나중에 나왔으면 다행이지만 인사말 전에 나왔다면 다 식지 않았을까 걱정이다. 후보의 인사말 청취는 ‘이성’이지만 요기는 ‘본능’이다. 밥상머리 연설은 짧을수록 좋다.

이 후보는 또 첫 당무회의에서 ‘보수·꼴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꼴통’이라고? 그랬다. 그는 홍보기획본부장이 당 이미지 쇄신에 힘쓰겠다고 보고하자 “‘한나라당 이미지는 무조건 보수·꼴통일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여간 실망이 아니다. 국가원수의 지나친 비속어 사용에 지칠 대로 지친 이들에게 ‘꼴통’은 흘려 듣기 힘든 단어다.

덧붙여 이 후보는 목소리 톤이 높은 편이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천천히 톤을 낮춰 무게를 느끼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 말을 너무 빠르게 하면 경하게 듣는다”고 충고했다.


곧 범여권에서도 대통령 후보를 낸다. 그 사람의 말버릇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이번 대선에선 짧게 한 마디를 해도 국민 대다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그런 후보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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