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로빈훗 정책의 허와 실/곽인찬 논설위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9.18 17:29

수정 2014.11.05 00:42



정권을 넘기기 전에 ‘대못’을 박아두려는 참여정부의 행보가 분주하다. 뒷감당은 차기 정권에 떠넘긴 채 로빈훗 식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과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에 이어 대부업체 이자율,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휴대폰 통신료에까지 적극적으로 간섭하고 있다. 하나같이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이다. 과연 그럴까.

비정규직 보호법은 그럴싸한 명분의 로빈훗 식 정책이 마음 먹은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그랬다면 추석 대목 코앞에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학적인 매출 제로 투쟁에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도 슬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방 건설업체들이 미분양 수렁에 빠져 연달아 부도를 내자 돈을 댄 금융기관들의 동반 부실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이러다간 주택사업을 포기하는 건설사들이 속출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공급 부족을 임대주택과 반값 아파트로 채우려는 모양이다.

대부업체들은 이자율 상한선을 연 66%에서 49%로 낮췄다. 정부가 시행령을 바꿔 어쩔 수 없었다. 저신용 서민층이 환호를 불렀을까. 천만에. 환호는커녕 지하로 잠적한 사채꾼들이 다시 활개를 치면 서민들의 한숨 소리만 커질지 않을까. 신용카드사들은 영세 가맹점 수수료를 낮추기로 했다. 역시 청와대와 정부가 로빈훗을 자처했다. 앞으로 카드사들은 정부가 관변 연구소를 시켜서 만든 원가 산정 표준안에 따라 수수료를 책정해야 한다. 어떤 강성 노조도 회사 경영에 이렇게 깊숙히 개입하지 못했다. 카드사들은 정부의 과잉 친절에 몸을 사리고 있다.

카드는 통신에 비하면 양반이다. 휴대폰 통신료 인하는 선거철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청와대에서 사인이 왔고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런 저런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통신업체들은 되레 편하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미리 요금을 내릴 이유가 없다.

정부의 잦은 개입은 담합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 들어 설탕값 등 민생 관련 담합에 과징금 철퇴를 내리고 있다. 그 때마다 해당 업체들은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건데 어쩌란 말이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통신료 인하를 놓고 나중에 같은 불평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똑같이 내리는 것도 담합이다.

가격을 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다. 정부는 경쟁이라는 멍석만 깔면 된다. TV의 예를 보자. 한때 국내 TV 시장은 삼성전자·금성사·대우전자가 치열한 3파전을 벌였고 지금은 국산 삼성·LG에 일제 소니, 중국산 하이얼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경쟁이 심하다보니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값이 뚝뚝 떨어진다. 서민용 TV 값을 따로 책정해 달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경쟁의 미덕이다.

정부가 시장을 대신하려 들면 그만큼 할 일이 많아진다. 임대주택도 더 지어야 하고 휴면예금·기부금을 끌어모아 서민대출용 사회투자재단도 세워야 한다. 공공사업은 본질적으로 비경쟁적·비효율적이다. 정부의 역할 증대는 나라 경제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역사를 보면 정부가 아예 대놓고 시장을 대체하겠다며 모든 기업을 국유화한 적도 있었다. 그 결말은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잘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역시 국유화를 모토로 삼았다. 페론 포퓰리즘의 망령은 여전히 이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말뚝 박아둔다고 그 정책이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허공에 못질해봐야 헛일이다. 우리가 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삼는 한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정책은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다.
터가 허술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paulk@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