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국민연금 확 뜯어고치자고?/곽인찬 논설위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2.04 18:00

수정 2014.11.04 15:51



권오규 부총리가 며칠 전 귀가 번쩍 뜨일 말을 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국민연금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빅 뉴스였다. 지난달 2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최한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토론회에서 밝힌 권 부총리의 기조연설 일부를 옮겨보자.

“금년 7월 국민연금법을 개정…그러나 중장기적인 재정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는 아직 미흡한 상황이므로 향후 확정기여형(DC) 제도로의 전환 등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확정기여형? DC? 이게 뭘까. 이걸 알아야 권 부총리의 제안이 얼마나 파격적인지 알 수 있다.

퇴직연금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퇴직연금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회사가 내는 돈이 확정적일 때는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종업원이 나중에 연금으로 받는 돈이 확정적일 때는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이라고 한다.
DC는 회사가 낸 돈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한다. 투자의 주체는 종업원이다. 퇴직 후 연금액수는 돈을 굴린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DB 역시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지만 돈을 굴리는 주체는 회사다. 회사는 수익률에 관계 없이 미리 정해진 연금을 종업원에게 지급해야 한다. 수익률이 좋으면 남는 장사, 나쁘면 밑지는 장사다.

이 제도는 지난 80년대 미국이 도입한 ‘401(k)’가 시초다. 401(k)는 미 국세법의 한 조항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연금의 적극적인 운용을 뜻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다시 권 부총리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국민연금에도 확정기여형(DC) 제도를 도입해 확 뜯어고치자고 말했다. 지금 국민연금은 일종의 확정급여형(DB)이다. 가입자는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미리 정해진 연금을 받도록 돼 있다. 설사 기금운용위원회가 연금을 잘못 굴려 손해를 봐도 그건 국가 책임이지 가입자가 받을 돈은 한 푼도 줄지 않는다.

이걸 확정기여형으로 바꾸면 가입자가 운용 주체가 된다. 잘 굴리면 연금이 많아질 수도 있고 잘못 굴리면 깎일 수도 있다. 그 책임은 국가가 아니라 가입자한테 있다.

얼핏 보면 국가가 장차 재정을 짓누를 국민연금 부담을 덜기 위해 발을 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숨은 의도와 상관 없이 확정기여형 제도의 도입은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이 제도는 국민연금에 대한 애착을 높일 수 있다. 자기가 낸 연금을 자기가 운용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세금처럼 여기는 이들에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일 것이다. 확정기여형 전환은 증시에도 긍정적이다. 80∼90년대 뉴욕 증시의 활황은 401(k)의 힘이 컸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권 부총리의 언급에는 빠졌지만 국민연금을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한다는 건 일종의 민영화를 뜻한다. 연금 민영화의 선구자 격인 남미의 칠레는 지난 81년부터 연금저축계좌(PSA·Pension Saving Account)라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PSA에 가입한 근로자들은 스스로 선택한 자산운용사의 투자 실적에 따라 연금을 받는다.

수익이 있는 곳엔 위험이 따른다. 연금을 가입자 마음대로 굴리다간 자칫 국민 노후보장 시스템에 금이 갈 수도 있다.
확정기여형과 기존 제도를 병행 실시함으로써 가입자에게 선택권을 주거나 포트폴리오 구성 등 자산운용에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는 등 사전 대책이 있어야 한다.

권 부총리가 왜 정권 말에 국민연금의 확정기여형 전환이라는 화두를 던졌는지 그 깊은 속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이 화두만큼은 진지하게 붙들고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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