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아들을 죽인 요임금/곽인찬 논설위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2.18 17:24

수정 2014.11.04 15:04



정치판이 난장판이다. 대통령도 글로벌 ‘일등품’으로 수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러나 어쩌랴. 그럴 수 없으니 유권자들은 오늘 투표장에 가야 한다. 한 가지 위안거리는 있다. 태평성대라던 중국 요순시대에도 권력 이동기에는 칼부림이 난무했다. 특검법을 둘러싼 작금의 삿대질과 멱살잡이는 되레 온순한 편이다.
요(堯)임금이 순(舜)에게 권력을 넘겨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춰보자.

요임금에겐 망나니 아들 단주(丹朱)가 있었다. 홍수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를 칠 때 단주는 배를 타고 이리 저리 놀러 다녔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했던 요는 단주 대신 나라를 다스릴 현자를 찾아나섰다. 요는 먼저 허유(許由)를 만나 선양할 뜻을 비쳤다. 그러자 허유는 물가로 가서 더러운 귀를 닦아내는 걸로 임금자리를 걷어찼다. 그 꼴을 보던 허유의 친구 소부(巢父)는 한술 더 떠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며 자기 송아지를 데리고 상류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요는 순을 만나 양위를 결심한다. 순은 계모의 구박을 피해 혼자 살고 있었지만 효성과 현명함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들 단주가 맘에 걸렸다. 장남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다른 이에게 권력을 넘겼다간 큰 일이 터질 게 틀림없었다. 고민 끝에 요는 단주를 먼 땅의 제후로 보낸다. 그러나 일은 터지고야 말았으니 단주는 지방 부족과 합세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다. 일찌감치 이런 사태를 예측한 요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출정했다. 민심을 등에 없는 요의 군대는 일격에 단주가 이끄는 반란군을 섬멸했다. 단주는 전사 또는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했던 요임금이 자기 아들만은 이토록 가혹하게 내쳤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순임금 체제는 이런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을 거쳐 들어섰다. 권력이란 이런 것이다. 자식도 아비도 없다.

요의 후계자 선정 과정도 까탈스럽기 짝이 없다. 요는 순의 사람됨을 알아보기 위해 두 딸을 시집 보내 사위로 삼았다. 두 딸이 남편을 호평하자 요는 순에게 나랏일을 맡겨 국정 능력을 테스트했다. 마지막은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큰 비가 내리는 깊은 산 속에서 탈출하라는 게 순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험이었다.

“삼림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천둥과 번개, 그리고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비…그야말로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순은 폭풍우치는 이 변화무쌍한 삼림 속을 걷고 또 걸으며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이 시험을 끝으로 요는 천자의 자리를 순에게 물려주었다.”(위앤커·袁珂 지음 ‘중국신화전설’)

인간의 권력욕은 무한하다. 누구라도 윗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을 떠나 처음 방문한 이웃별에는 절대군주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린왕자를 쥐 한 마리밖에는 다스릴 게 없는 그 별의 법무장관에 임명한다. 따분해진 어린왕자가 그 별을 떠나려 하자 절대군주는 어린왕자를 서둘러 대사로 임명한다. 어린왕자의 눈에 “어른들은 정말 이상한 존재”이지만 불가사의한 권력욕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이다.

왕정 시대에는 임금이 후계자를 뽑으면 됐다. 그러나 언필칭 국민이 주인 행세하는 민주국가에선 유권자들이 스스로 통치자를 뽑도록 돼 있다. 정치, 정치인이라면 신물이 난다고? 그래도 민주공화국 유권자로서 권리는 행사하는 게 옳다.


요임금은 아들을 버리고 순을 골랐다. 망나니 아들이 나라 망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아들을 잃는 쪽을 택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의 언행을 죽 지켜봐 왔다. 투표장으로 가기 전에 순에게 권좌를 넘겨준 요임금의 심정을 잠깐 헤아려보자. 부디 순을 고른 요임금의 지혜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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