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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 기상협력 이제 첫걸음] 특별기고/이만기 기상청장

이재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2.25 17:32

수정 2014.11.04 14:49



2007년 12월17일. 남과 북이 분단된 이후 기상 당국자가 처음 개성에서 만났다. 62년 만이다. 참으로 오래 걸린 시간이다. 이틀간의 조용한 만남이었지만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동안 남과 북의 정상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 여러 분야의 민간인, 이산가족 등이 만났지만 기상 당국자의 만남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분단 이후 여러 국제회의장에서 남과 북의 기상 당국자가 만날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비공식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양측이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결국 양 기상당국은 교류와 협력이 공식적으로 가능한 정치 상황의 틀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 10월 있었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지난 11월14일부터 서울에서 사흘간 개최된 제1차 남북총리회담에서 기상당국자가 만날 수 있는 물꼬가 트였다. 우리나라가 북한에 관측장비를 지원하고 남북 상호 간 기상정보를 공유하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올해 안에 갖기로 합의함에 따라 이번 기상협력을 위한 실무 접촉이 이루어졌다.

남북 기상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최근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은 기후변화로 규모와 강도가 커지는 자연재해의 대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올해만 해도 북한은 지난 8월 내린 많은 비로 큰 피해를 보았다. 북한의 중앙통계국과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사망 또는 실종이 600여명, 부상자 4000여명, 이재민 90여만 명, 주택 침수 또는 파괴가 20여만 가구, 곡물수확량 손실이 100만t, 석탄유실이 수십만t에 달한다고 한다.

북한의 기상업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확인할 기회는 없었지만 세계기상기구(WMO) 등의 자료를 볼 때 아시아 지역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낙후된 것은 분명하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기상분야에 대한 투자는 먹고사는 문제와 같은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상업무는 수학, 물리, 대기과학과 같은 기초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첨단 관측장비, 컴퓨터, 정보통신 기술 등의 뒷받침이 있어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미래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기상업무의 핵심인데 이는 현대 과학 기술을 모두 동원해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마당에 과거의 낡은 기상 기술과 인프라만으로는 빈발하는 이상기상에 대처할 수 없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분단 이후 남북 기상당국 간에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기상재해 예방과 직결되는 정확한 일기예보를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관측자료와 관측한 자료의 신속한 교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기예보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온, 기압, 풍향, 풍속과 같은 관측자료마저도 중국과 같은 인근 국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교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료 교환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리 없다. 만약 남북 간에 직접 자료를 교환할 수 있는 통신망이 개통된다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다.

남북의 기상협력이 더욱 확대되면 남측은 낙후된 북한의 관측 인프라의 성능 향상을 지원하고 그 자료를 받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은 우리 기상청이 지상관측을 위해 542개소, 고층관측을 위해 12개소, 황사관측을 위해 19개소, 기상레이더 관측망 10개소에 입체적으로 깔아 관측한 자료뿐만 아니라 2009년 발사 예정인 기상위성자료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188개 WMO 회원국 중에서 11개 나라만 가능한 첨단 예보 기법인 수치예측자료 역시 북한은 우리나라로부터 받아 예보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이틀간 개성에서 있었던 남북 기상협력 실무접촉 한번으로 양측이 바라는 바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 2월에 2차 실무접촉을 열기로 약속하였으니 머지않아 남북 간의 기상협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는 기상재해로부터 우리 한민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기상분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을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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