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시나요]

1994년 포항방사광가속기 완공



1994년 12월 7일. ‘꿈의 빛’ 방사광(放射光)을 만드는 ‘포항방사광가속기’가 준공된 날이다. 우리 기술진의 손으로 완성된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국가공동연구시설로도 자연스럽게 등극했다. 당시 포항방사광가속기처럼 다양한 빛을 만드는 ‘제3세대형’ 보유국은 EU(유럽연합)·미국·이탈리아·대만 등 4개국에 불과해 우리나라는 5번째 ‘제3세대형 방사광가속기’ 보유국이 됐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여 다양한 파장과 광도의 빛을 생산하는 ‘빛 공장’이다. 이 빛을 활용하면 일반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세포와 금속물질의 움직임과 표면구조, 분자구조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방사광가속기는 수천억 원의 경제 효과를 내는 ‘황금알’이라고 불린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신화도 방사광사속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1999년 삼성전자는 휴대폰의 높은 불량률 때문에 고민하다 가속기연구소를 찾아와 ‘휴대폰 비파괴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반도체 소자 기준축의 뒤틀림 현상과 납땜 불순물을 찾아냈고 소자 불량률을 70%에서 10%로 낮췄다.

포항방사광가속기 역사는 포항공과대학교 설립과 함께 한다. 1980년대 후반 포항제철(현 포스코) 박태준 회장은 포항공대의 학장을 섭외하던 중 김호길 당시 연암공전 학장을 어렵게 만나게 된다. 김 학장은 이 자리에서 “나는 대학 총장보다 가속기연구소 소장이 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방사광가속기가 과학기술발전의 필수 장비라는 사실을 알게된 박 회장은 김 학장에게 “포항공대를 성공적으로 개교하면 이 연구소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포항공대가 첫 신입생을 모집한 1986년 김 학장은 우수 학생 유치에 성공하고 박 회장은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방사광가속기연구소 설립의 두 주역은 1994년 12월 7일 개최된 완공식에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김 학장은 그 해 4월 학교 체육대회에서 운동중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고 박 회장은 정치적인 이유로 일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연간 2000여명의 국내외 과학자들이 이용하는 등 기초 및 응용연구 분야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차세대 리튬 2차전지 음극 신물질 개발 △세계 최초 반도체 표면 분자 이식 기술 △네이처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비아그라 기작원리와 B-Z DNA 구조 규명 등이 바로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자랑이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사진설명=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산실인 포항방사광가속기의 빔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