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대금 명인 문동옥 “천년의 소리,천하에 울리길..”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9.18 15:42

수정 2014.11.06 00:35



“만파식적(萬波息笛)의 고장 경주를 대금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내 평생의 목표입니다. 지난 2002년 신라만파식적보존회를 만들고 세계피리축제 유치나 세계전통악기박물관 건립 등을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필생의 꿈을 위한 것입니다.”

경북 경주에서 직접 대금을 만들고 연주하는 문동옥 신라만파식적보존회 이사장(51)의 꿈은 원대하다. 대금을 만들고 그것을 연주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한국의 전통악기인 대금을 세계에 알리고 보급하는데 더욱 힘을 쏟겠다는 각오다.

문 이사장이 대금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열일곱살 댕기머리 소년시절. 1974년 경기 용인 민속촌이 개관할 당시 유교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던 문 이사장 가족은 그곳에 입주하게 됐고 거기서 악기장 신병문 선생을 만났다. 신병문 선생에게 수제 죽관악기 제작 기술을 전수받던 소년 문동옥은 그곳에서 또다른 운명과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대금 명인 김동진 선생과의 만남이다. 신묘한 대금 소리에 빠져 스승을 따라 길을 나선 문 이사장은 이후 30여년을 대금과 함께 해왔다.

김동진 선생의 문하에 든지 2년만인 1976년 문 이사장은 작은 쾌거를 이룩했다. 당시 꽤 인기가 높았던 KBS 민속백일장에 나가 월말 장원에 이어 연말 장원에 오른 것. 당시 많은 언론 매체들은 댕기머리 10대 국악 소년의 출현을 대서특필했고 이로 인해 소년 문동옥은 세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문 이사장에게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생일대의 회한(悔恨)은 스승인 김동진 선생의 때이른 죽음이다. 문 이사장이 갓 서른을 넘겼을 때인 지난 1989년 김동진 선생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스승이 떠난 이후 스승의 소리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 저의 과업이 됐습니다. 영남지역 특유의 음색과 어법을 가지고 있는 김동진류 대금산조의 맥은 유일한 제자인 제가 짊어져야 할 일종의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문 이사장은 지난 2002년 신라만파식적보존회를 만들어 김동진류 대금산조를 전승·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의 본향이 경북 경주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문 이사장은 지난 2002년부터 ‘천년의 소리 만파식적’ 공연을 매년 한차례씩 열고 2004년부터는 규모를 보다 확대한 ‘경주 만파식적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오는 20일 오후 7시30분 경주 안압지 야외무대에서는 일곱번째 ‘천년의 소리 만파식적’ 공연이 열린다.
이날 무대에는 영화 ‘서편제’로 널리 알려진 영화배우 겸 국악인 오정해를 비롯해 임이조(무용·서울시립무용단장), 장익선(단소·중국연변예술대 교수), 김규형(타악·피리3중주단 단장), 오해향(가야금·포항가야금연주단 단장), 정경숙(민요·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한상일(연출·동국대 한국음악과 교수) 등 문 이사장과 뜻을 같이 하는 국악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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