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이번엔 기술 먹튀인가/곽인찬 논설위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1.13 16:28

수정 2009.01.13 16:28



툭 터놓고 얘기해 보자. 기업은 왜 다른 기업을, 그것도 해외 기업을 인수하려들까. 물건을 더 팔 수 있든 첨단 기술을 획득하든 뭔가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선단체가 아닌 다음에야 부실한 해외기업 종사자들의 생계을 돕기 위해 큰 돈을 쓸 리는 만무하다. 지금은 얼토당토 않은 ‘추억’이 됐지만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9월 산업은행은 리먼 브러더스를 살까말까 저울질을 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그 때 ‘사자’는 쪽은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이 가진 첨단 금융 노하우에 군침을 흘렸다.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이렇듯 철저하게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차가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한 것을 두고 ‘기술 먹튀’ 논란이 일고 있다.
상하이차가 기술만 쏙 빼먹고는 회사가 어려워지자 본국으로 철수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두 가지가 불현듯 떠오른다.

지난해 11월 1심 법원은 외환은행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판 것이 헐값 매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매각을 주도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로써 경제 국수주의에 바탕을 둔 먹튀 논란이 좀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웬걸, 우리 사회의 반외자 정서는 과연 끈질기다. 한동안 미국 자본에 빗장을 걸더니 이번엔 중국 자본에 차단막을 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론스타의 교훈에서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한 듯하다. 폐쇄적인 반외자병은 언제든 도질 태세를 갖추고 있다.

먹튀로 치자면 우리도 만만찮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야반도주는 이미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종업원 봉급을 떼먹고 도망치듯 발을 빼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야반도주는 이미 양국 간 외교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혹시 중국인들은 상하이차의 전격 철수 움직임을 보면서 은근한 보복의 재미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기술 먹튀’라는 용어 자체도 모멸적이다. 쌍용차가 동아자동차라는 이름을 버리고 쌍용그룹 계열사로 공식 출범한 96년, 대우전자는 프랑스 전자업체인 톰슨 멀티미디어를 단돈 1프랑에 인수하려다 막판에 제동이 걸렸다. 저 멀리 극동에 있는, 잘 알지도 못하는 ‘코레’라는 개발도상국의 어떤 전자회사가 톰슨을 사려들자 프랑스 내 여론이 들끓었다. 국가 자존심까지 거론됐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손을 들었고 대우는 쓴 입맛을 다셨다.

우리도 당했으니 너희도 당해보라는 건가. ‘기술 먹튀’라는 말 속에는 은근히 중국을 얕잡아 보는 마음이 배어 있다. 1조9000억달러(약 2470조원)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세계의 돈줄’ 중국이 그렇게 얕잡아 볼 나라인가. 세계 M&A 시장은 중국 기업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쌍용차에 목을 맬 이유가 전혀 없다. 로이터통신은 상하이차가 더 나은 자동차 회사를 사들이기 위해 쌍용차를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상하이차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51% 지분을 가진 대주주라면 세계적인 금융위기 핑계를 대가며 한국 정부에 손을 벌리기 전에 먼저 자구노력을 폈어야 했다. 그런 노력도 없이 인수 4년 만에 불쑥 법정관리를 신청해 먹튀 소리를 듣는 건 자업자득이다.

그렇다고 뒤늦게 멱살잡이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론스타도 그렇고 상하이차도 그렇고 우리가 아쉬울 때 부실기업을 인수했다. 그 쪽이 갑(甲), 우리가 을(乙)이다. 외국 자본 다 막아놓고 자력갱생할 것이 아니라면 현실을 인정하고 냉철하게 대처해야 한다.
상대방을 먹튀로 몰아붙여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지난 2005년 미국 정부는 여론과 국익을 앞세워 석유업체 유노칼(Unocal)을 인수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좌절시켰다.
내줬다가 먹튀라고 비난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느니 차라리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애초에 제대로 방화벽을 치는 것도 한 방법이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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