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열살 생일 맞은 ‘유로’/안정현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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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유로가 열살 생일을 맞았다. 지난 99년 유럽연합 회원국 중 11개 국가의 공식통화로 출범한 유로는 2009년 슬로바키아의 가입으로 16개국 약 3억2900만명이 사용하는 세계 주요 통화로 자리잡았다. 출범 당시에는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도 적지 않았지만 우려를 불식시키고 기존의 기축통화였던 달러의 지위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유로의 성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로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스 티어마이어 전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유로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축하면서 “출범 이전엔 비관적이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유로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지 않다”고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에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전례 없는 금융위기와 불황은 유로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낳고 있다. 첫째로 경제 위기와 더불어 단일 통화인 유로가 더욱 힘을 얻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유로가 이번 금융위기의 방패막이 역할을 비교적 잘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전문가는 여러 유로존 역내 국가들의 금융위기가 외환위기로 번지지 않은 것은 유로의 덕분이라고 본다. 같은 유럽 연합 내에 속해 있지만 유로존에 속하지 않은 영국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영국을 덮친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은행 부실화로 지난 1년 6개월간 파운드화는 주요 통화 대비 30% 이상 폭락했다. 불과 1년 반 전엔 파운드당 1.5유로였던 것이 현재는 거의 1대 1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 밖에도 동유럽의 신흥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유로존에는 가입하지 않은 헝가리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유로존 가입을 망설이거나 꺼리고 있었던 EU 회원국들에 자극이 될 전망이다. 일부 동유럽 신흥 EU 회원국들도 가입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심지어 그동안 유로에 적대적이었던 영국에서도 유로존에 가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1, 2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번 위기는 유로에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모든 역내 국가들이 확대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부실화된 금융기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만큼 역내 국가들의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부동산 버블과 채무에 의존해 성장을 유지해 왔던 스페인과 아일랜드 그리고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적자가 누적됐던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등의 재정상태는 주변국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1년간 역내 국가들의 국채에 대한 시장 금리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국채 금리가 높게 거래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자산이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에서 일부 회원국들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엔 세계적인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 국채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이들 국채가 모두 유로화 표시 채권으로 발행되는 만큼 한 회원국의 채무 불이행은 유로화의 건전성에 영향을 줘 여타 회원국들에 피해로 전가된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재정적자 문제는 EU의 우선 순위 논의 대상이다.

유로그룹의 의장을 맡고 있는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겸 재무 장관은 회원국들의 국채 발행을 전담할 기관을 신설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국채 발행 창구를 단일화하고 발행에 같은 조건을 적용함으로써 리스크를 분담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는 찬성한 반면 비교적 재정상태가 건전한 독일과 프랑스는 꺼리고 있다.

현재 공동예산이 매우 적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제안은 자칫 주변국들의 방만한 재정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 자신들은 퍼주기만을 해야 할 상황으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려면 궁극적으로 유럽 전체 아니면 우선은 유로존 안에서라도 높은 수준의 연방예산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유로에 커다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junghyu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