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IMF의 화려한 변신/곽인찬 논설위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2.10 16:50

수정 2014.11.07 11:50



작금의 위기 국면에서 꼴불견 중의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이다. 먼저 그 이중성이 돋보인다.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 IMF의 위세는 대단했다. 거덜난 한국경제를 살릴 돈줄을 쥐고 있었으니 오죽했으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돈을 꿔주는 대신 IMF는 고금리와 긴축이라는 깐깐한 처방전을 내밀었다. 거품을 빼기 위한 구조조정과 해고는 일상 다반사였다.
그것도 감지덕지, 이렇게 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말에 온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외화벌이를 위해 장롱 속 금을 뒤지는 눈물겨운 사연도 있었다.

자본시장을 활짝 열라는 IMF의 권고도 충실히 따랐다. 그러자 한국 간판기업들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잇따랐고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은 2004년 한때 44%를 넘어서기도 했다. 지분 구조만 보면 영락없이 외국계로 탈바꿈한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구제금융 수혜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모범적인 조기 졸업생이라는 칭송에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그랬던 IMF가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지자 전혀 다른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아니, 내놓았다기보다는 미국이 하는 대로 끌려간다고 보는 게 옳다. 전대미문의 위기에 미국은 사상 초유의 제로금리와 사상 최대의 부양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놀랍게도 IMF는 돈 풀기에 초점을 맞춘 오바마 행정부의 반(反) 긴축 정책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수석 이코노미스트라는 이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한테는 만사 제치고 거품을 빼라더니 왜 IMF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긴축과 고금리를 권하지 않는 걸까. 미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았으니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은 애당초 구제금융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중요한 건 IMF의 원칙이지 그 나라가 구제금융을 받았는지 여부가 아니다. 처방의 적절성을 떠나 IMF는 분명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러니 IMF가 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사악한 3총사’라는 비판을 받는 게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식 예측도 미덥지 못하다. 아무리 상황이 급변했다 한들 불과 두 달 만에 올해 한국의 성장률 예상치를 6%포인트(2→-4%)나 끌어내린 것은 너무 심했다. 성장률 격차가 1년 새 8%포인트(올해 -4→ 내년 +4.2%)를 넘나들 것이라는 전망 역시 ‘아니면 말고’ 식의 무성의가 엿보인다.

흥미로운 건 우리 역시 180도 달라진 IMF의 처방을 직수굿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쓰다 달다 불평 한 마디 없이 시장에 더 많은 돈을 풀지 못해 안달이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더디 내린다고 갖은 지청구를 들었다. IMF는 마치 헌법재판소라도 되는 양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IMF가 차지하는 위상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제는 실상을 직시할 때다. IMF 출범의 기초가 된 브레튼우즈 협정(1944년)은 누가 뭐래도 미국의 작품이다. 대주주 격인 미국과 주요 선진국들의 금융보호주의 움직임에 IMF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IMF 기준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외환위기 때 자본시장을 통째로 연 대가를 이번에 톡톡히 치르지 않았는가. 외자는 여차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똑똑히 확인했다. 애초 외자의 유·출입에 합리적인 방지 턱을 설치했다면 충격이 덜 했을 것이다. ‘IMF=무오류’ 환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IMF의 개혁은 불가피해 보인다.
사전 경보 기능은 완전히 실종됐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후 처방도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어언 65년 오랜 세월이 흘러서일까, 요즘 IMF는 빛바랜 낡은 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오는 4월 런던에서 열릴 제2차 G20(주요 20개국) 금융정상회의가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paulk@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