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盧소환>前대통령 수난史‘초대~16대’


노무현 전 대통령(16대.2003∼2008년)에 대한 소환 조사는 역대 세 번째이다. 그 동안 전직 대통령이나 그의 가족들이 비리에 연루된 적은 많았지만 검찰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두환씨(11∼12대.80∼88년)와 노태우씨(13대.88∼93년)에 이어 이번이 13년 반 만에 처음이다.

우리 전진 대통령 수난사를 보면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1∼3대.48∼60년)부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이 전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이후 하와이로 망명해 사법심판을 받지는 않았다. 대신 최인규 당시 내무부장관 등 측근들만 사형을 비롯한 중형을 선고받을 뿐이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4대.60년∼62년)은 1974년 민청학련 배후 지원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1976년 명동성당 3.1구국선언 사건으로 징역 8년, 1979년 YWCA위장결혼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검찰의 직접 조사를 받지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으며 법원 선고 후 형집행면제 처분을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5대∼9대.63년∼79년)은 1979년 10월26일 측근이었던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해 사법심사 대상자 자체가 되지 못했다.

이후 7개월여 동안의 짧은 임기를 마친 최규하 전 대통령(10대)은 1989년 12월 국회광주특위의 4차례에 걸친 출석 요구와 임의동행명령을 모두 거부, 국회모욕죄 등으로 형사고발 됐지만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또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고소고발 사건 참고인 조사에서도 서면진술 자체를 응하지 않았다.

전씨와 노씨는 지난 1995년 5월 12.12쿠데타 및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검찰의 서면조사를 받지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불구속 기소된다.

그러나 그해 10월 당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이 ‘4000억원 비자금’을 폭로함으로써 6공화국 비자금 수사가 시작됐다.

노씨는 이에 따라 검찰에 2차례 나와 조사를 받게 되고 첫 소환과 첫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안게 되는 첫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이후 전씨도 12.12쿠데타를 주도한 혐의(반란수괴) 등으로 검찰 소환을 통보받지만 “종결된 사안에 대한 수사는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이른바 ‘골목길 성명’내고 소환에 불응한 채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검찰은 곧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전씨를 전격 체포해 구속했다. 전씨는 평화의 댐과 관련해서도 감사원으로부터 서면조사를 받았다.


노씨와 전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지만 대법원 판결로 사형에서 사면 받는다. 그러나 문민정부 시절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기본적 경호를 제외한 나머지 전직 대통령 예우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법이 바뀌어 전직 대통령 예우는 박탈당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14대.93년∼98년)은 1997년 외환위기와 관련해 1998년 검찰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서면조사를 받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15대.98∼2003년)도 퇴임 직후인 2003년 대북송금 특검에서 수사 선상에 올랐으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면서 직접 조사는 받지 않았다.

/jjw@fnnews.com정지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