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도메인..방심하면 뺏긴다



나스닥 시가총액이 12억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유명 반도체 업체 실리콘랩은 최근 도메인 사용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개인에게 도메인을 빼앗겼다가 이를 되찾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전미중재연맹(NAF)의 분쟁 조정 신청을 통해 가까스로 되찾은 것.

한국의 대기업들도 최근 도메인 관리를 신경쓰고 있다지만 실수로 연장하지 않거나 도메인을 선점당해 낭패를 겪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특히 그룹이나 기업의 기업이미지(CI)나 명칭을 교체할 때를 노리는 도메인 선점 사건이 잦다.

■도메인 선점 후 기업에 금전 요구

이같은 ‘도메인 사냥’이 통하는 것은 전세계 국가 대부분이 ‘선접수 선처리(First come, First act)’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표권에 대한 사전 심사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덕분에 분쟁 양상은 도메인 관리 담당직원이나 공동 창업자, 홈페이지 제작 대행업체가 개인 명의로 미리 도메인을 등록해 놓고 회사가 커질 경우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사이트를 찾는 한국과 달리 도메인을 직접 입력하는 방식이 통하는 해외에서는 도메인이 곧 브랜드인 만큼 상당한 고가에 거래된다. 도메인을 선점당할 경우 정당한 법적 권리가 있을 때에도 법적 비용을 감수해야 할 뿐 아니라 이미지에 손실을 입게 되고 매출 기회가 무산되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

■한국도 ‘도메인 분쟁 다발지역’

그럼 한국은 어떨까. 도메인 분쟁사건에 휘말렸던 기업들이 밝히기를 꺼려해 잘 노출되지 않았을 뿐, 이미 한국은 전세계 도메인 분쟁에 따른 소송건수 통계에서 세계 6위에 오른 ‘분쟁 다발지역’이다. 도메인 등록 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인터넷주소분쟁 조정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도메인 분쟁 상담 및 조정신청 건수는 2005년 525건에서 2008년 996건으로 급증했다. 조정을 거치고 않고 바로 법적 소송으로 가는 경우까지 합치면 분쟁 건수는 더 많은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엔 한 개인이 등록한 펀드닷컴(Fund.com) 도메인을 해당 이름을 가진 증권사가 100억원 상당에 구매하기도 했다. 두루넷도 2000년 초 재미동포가 보유하고 있던 ‘코리아닷컴(Korea.com)’ 도메인을 약 60억원에 사들인 바 있다. 또 SK텔레콤은 2002년부터 ‘안티 SKT’ 사이트로 이용되던 에스케이텔레콤닷오알지(sktelecom.org) 도메인에 대해 지난해 법적 싸움을 벌여 자사 도메인으로 편입한 바 있다.

■2∼3글자 도메인 대부분 약어… 되찾기 힘들어

도메인을 선점당했다고 해서 무조건 빼앗기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한 권리를 찾아오는 데도 한계가 있다. 특히 2글자에서 3글자로 이루어진 도메인의 경우 아무리 저명한 상표라도 찾아오기 어렵다. 이에 대해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 유재열 사무국장은 “단어를 축약한 ‘약어’가 대부분이라 권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이해 관계자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KT.com만 해도 한국통신(Korea Telecom)과 한국철도(Korea Train)가 겹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선점한 상대방이 도메인을 다른 이에게 매각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자신이 사용해왔을 경우 도메인 사냥 혐의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GS그룹이 지에스닷컴(GS.com)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서 찾아오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그런 만큼 도메인을 찾아오는 확실한 방법은 제값을 치르는 길 뿐이다. LG그룹이 엘지닷컴(LG.com)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 건설사에서 제값을 주고 도메인을 구입한 것이나 지난 2008년 2월 KT가 케이티닷컴(KT.com)을 개인에게서 2억5000만원을 주고 구매한 것이 예다.


도메인 자산관리업체 후이즈 관계자는 “등록한 기간만큼 사용권이 주어지는 도메인의 특성상 제때 연장하지 않아 발생하는 이런 사고는 한국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며 “특히 한국은 도메인 가치나 중요성에 비해 이에 대한 관리 의식이 소홀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도메인 수를 보유한 업체는 삼성으로 1만여개의 도메인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도메인 수는 약 1억7700만개다.

/fxman@fnnews.com 백인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