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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잃어버린 10년’ 시나리오/강일선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7.30 16:43

수정 2009.07.30 16:42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요즘처럼 경제가 화두가 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경제 때문에 비즈니스나 가정생활들이 크게 달라졌다.

향후 경제에 대한 핑크빛 전망을 하는 경제전문가들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종잡을 수 없다. 다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듯이 과거를 통해 미래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다.

지난해부터 대공황 이후 보지 못했던 극심한 디플레이션이 찾아오면서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풀었다. 미국만 지난 2년 동안 무려 12조달러를 방출했다.

연간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액수다.

올해 초 세계 주요 기관과 각국 정부들이 희망적인 예측을 내놓자 주가는 급등했다. 돈이 돌기 시작했다. 다우지수는 최저점보다 30% 가까이 반등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생산이나 소비지수, 신규주택 착공, 소비자신뢰지수 등이 개선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역시 연초에 비해 크게 호전됐다. 중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브라질에 투자한 일부 펀드는 수개월 사이 무려 600%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다. 글로벌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금융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위험이 감소했을 뿐이지 위험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워런 버핏 등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2차 부양책을 주장하는 것도 현 경제가 낙관할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해 주고 있다.

더 큰 위협은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다. 세계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워낙 급한 나머지 너무나 많은 돈을 풀었기 때문에 자금을 어떻게 흡수하느냐가 미래 경제가 안고 있는 최대 과제다.

경제가 바닥을 확인하고 회복의 조짐을 보이게 되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금리인상과 통화환수 정책을 강화할 것이다. 역사상 최고치까지 올랐던 채권 값은 다시 폭락할 것이며 금리 인상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국제 상품가격은 폭등하게 될 것이다. 경제 리스크가 하락하면서 그동안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왔던 달러의 가치 역시 단기적으로는 약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앞으로 수년간 금리를 계속 인상할 수밖에 없고 이는 세계적인 유동성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조지 소로스는 금리와 반비례 관계에 있는 주식시장이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이다가 장기간 ‘L자형’으로 횡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또 많은 전문가는 지난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던 약 20년간에 걸친 장기적인 주가 침체가 재연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인플레이션이 만연했던 당시 다우지수는 1966년 995에서 1973년 1051까지 올랐다가 1974년 577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회복세를 보이다가 그 후 약 10년간 700∼1000을 밴드로 움직였다. 1973년 최고치 1051을 다시 탈환한 것은 10년이 지난 1983년이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부가 금리 인상 정책을 유지한 결과였다. 연방 금리는 70년대 중반 5%에서 1981년엔 20%까지 상승했다.

이번에도 당시와 유사한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를 잡고 엄청나게 풀린 돈을 잡으려면 장기간에 걸쳐 금리를 올려야 한다. 이는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결국 경제가 ‘L자형’으로 횡보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앞으로 전개될 ‘잃어버린 10년’의 시나리오다.

현대 경제는 세계화와 함께 과거와는 달리 빠른 속도로 변형되는 속성이 있는 만큼 침체기가 길지 않을 것이란 희망적인 분석도 있다.

하지만 지난 90년대 10년간에 걸쳐 장기불황에 처했던 일본의 예를 보면 결코 낙관만 할 수도 없다.

/ki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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