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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佛 탄소세 도입 논란 속사정/ 안정현 파리 통신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9.10 18:12

수정 2009.09.10 16:43

프랑스의 탄소세 도입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 사용에 t당 일정액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한 것. 세금 도입 취지는 두 가지다. 첫째 들어오는 세수로 친환경에너지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석유, 가스, 석탄 등 탄소배출 에너지의 가격을 높여 그 동안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았던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난 유럽의회 선거 때까지만 해도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첨예한 관심을 보였던 프랑스 국민 대다수가 이러한 탄소세 도입에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환경위기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경계심에 힘입어 녹색당 계열의 유럽 에콜로지가 예상 밖 선전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환경 및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세금 도입에는 반대하는 아이러니가 빚어지고 있다.
탄소세 도입에 대한 프랑스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3분의 2가 반대를 표명했다. 좌파 지지층이든 우파 지지층이든지에 상관없이 광범위한 반대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결국, 개인이 분담해야 할 세금만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때문이다.

제1야당인 사회당의 지난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은 프랑스에서 디젤 승용차 대신 값비싼 전기 자동차를 소유할 구매력을 지닌 국민이 얼마나 되냐고 반문하면서 이번 법안이 계층 간 불평등만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비교적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도시 교외주민이나 시골 주민들 등 서민층 부담만 가중시키게 될 것이라는게 그의 의견이다. 그는 대안으로써 오히려 정유기업들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유럽 녹색당의 선전에 놀라 정책 변환을 꾀한 정부였지만 국민들의 반응이 예상 밖으로 나오자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당의 의원들도 내년 봄으로 다가온 지방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듯 정부 발표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내놓았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의 장-프랑수아 코페 원내 대표는 의원들이 눈 감고 투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여당에 미칠 성난 민심 수습에 앞장섰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다른 정부 관계자들이나 여당의원들도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조세 경감이 주요 공약이었던 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세금이 하나 생기지만 그 과실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국민들은 당장 세금이 오르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정부는 다른 사회분담금을 줄이겠다는 대응방안을 내놓는 등 여론 수습에 몰두하고 있다.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서민들의 세금 및 사회분담금 총액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탄소세 또한 위원회에서 제안한 t당 32유로보다 낮은 15유로대로 책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렇게 탄소세가 낮게 책정되면 세금 도입 취지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탄소세 도입의 목적이 석유, 가스, 석탄 등 탄소배출 에너지의 가격을 높여 소비를 줄이겠다는 것인데 적은 세금으로 가격 상승효과가 미미하면,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촉진하지도 못하고 국민 부담만 가중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여론의 변화가 정부 여당의 서투른 홍보에서 비롯되었다고 질타했다. 기후-에너지 분담금이라는 다른 용어가 제시되기도 했는데 굳이 ‘세금’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프랑스 국민에게 강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도입 시기도 문제가 되고 있다. 굳이 아직 경제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도입을 추진할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내년 3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탄소세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프랑스를 달굴 또 하나의 이슈가 되고 있다.

/junghy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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