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밀려난 ‘기업친화’ 정책/임정효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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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명박 정부가 초심을 잃은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기업인들뿐 아니라 월급쟁이들과 장사꾼들 입에서도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집권 초기 정부가 목청을 돋워가며 외쳤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란 말은 이젠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특히 기업인들에게선 귀를 쫑긋 세우고 다녀도 이 말을 들을 수 없다.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적극적으로 걷어내면서 개혁의 상징으로 숱하게 인용되던 ‘전봇대’란 단어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렸다.

실제로 요즘 정부는 경제위기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에서인지 기업 프렌들리엔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대신 그 자리에 ‘친 서민’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등 정책의 큰 틀이 바뀐 모양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주요 인사들이 ‘친 서민대책’을 수시로 강조하는가 하면 재정적자를 키우면서까지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는 게 그 증거다. 또 서민생활에 영향이 큰 통신비나 기름값, 설탕값 등을 끌어내리기 위해 관련기업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말을 잘 안듣는지 요즘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검찰의 칼날이 시퍼렇게 서 있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 나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서민들의 고통을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얘기하고 행동하는 건 문제가 있다. 기대감을 이런 식으로 높이면 뒷감당이 안될 뿐더러 국정의 균형에도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정부의 서민정책과 관련된 기업들은 불안감과 함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기름값의 경우 정부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있는 고유황유를 수입해 유통시키겠다는 방침까지 발표한 상태다. 이명박 정부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있는 친환경 녹색정책은 저당 잡혀버린 것인지 얼떨떨하기까지 하다.

특히 지난달 27일 발표한 ‘통신요금 인하’는 압권이다. ‘통신요금 인하’는 전체 국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 때부터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인기가 필요할 때마다 애용해 온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시장경쟁 촉진을 통해 점진적 인하를 유도한다’는 큰 틀에 사회적 합의가 돼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MB도 대선공약으로 20% 통신료 인하를 내세웠다가 당선 후 요금문제는 민간부문인 점을 인정, 시장경쟁에 의한 점진적인 인하에 동의했었다. 또 업계도 결합상품 등을 통해 요금을 꾸준히 내리는 등 그 동안의 과정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정부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큰 폭의 요금인하를 통신업체들에 요구했고 이번에 기어코 현실화시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요금인하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번 요금인하로 대통령의 공약인 20% 통신료 절감이 현실화되게 된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국민에게 “여러분이 원하는 걸 MB 정권이 과감하게 했으니 꼭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과정에서 통신업체들이 몸살을 앓은 건 물론이다. 대기업과 각을 세우곤 했던 이전 정권들도 하지 않은 일을 ‘기업 프렌들리’를 부르짖어 온 MB정권이 해치웠으니 그럴 수밖에.

사실 소비자치고 저렴한 통신비를 마다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기업을 짓눌러 강제로 받아낸 요금인하는 솔직히 달갑지 않다. 먹다 체할 것 같은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정책은 기업을 김빠지게 하고 의욕을 잃게 만든다. 열심히 기업 활동하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3자가 나타나 판을 휘저어버린다면 누가 의욕을 내겠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마이너스로 되돌아오는 법이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은 앞서가며 투자해 온 통신업체들의 역할이 컸다. 지금도 4세대 통신을 위해 투자를 계속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매출이 뚝 떨어지게 생겼으니 투자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후유증이 따를 것이다.
정부는 이 모든 것이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는 모르겠다. 현 정권은 이전의 노무현 정권을 포퓰리즘 정권이라고 맹비난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욕은 먹지 않으려하고 인기영합적인 정책에 매달린다면 이 정권도 그런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