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남한산성’,혹독한 戰亂 속에도 ‘꽃다운 사랑’ 있었네



뮤지컬 ‘남한산성’의 주인공 오달제는 김훈의 원작 소설 384쪽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스물일곱 살로 성 밖에 노모와 임신한 처가 있다는 묘사와 함께 임금이 삼전도로 향하기 직전 그를 불러 비장한 어투로 몇 마디 나누는 게 전부다. 뮤지컬은 김훈의 소설에서 주변적으로 다뤄졌던 오달제를 중심부로 끌어내 그를 중심으로 인물 구도를 재배치하는 등 이야기판을 새로 짰다.

뮤지컬은 ‘의로운 기생’ 매향처럼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을 새로 창조해 내기도 했다. 오달제의 임신한 아내 남씨도 뮤지컬을 통해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그분의 여자’를 자처하는 두 여인은 ‘차마 놓을 수 없어’ ‘괜찮아요’ ‘언젠가 오겠지’ 같은 애절한 사랑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 남성적 필치의 기개와 육중한 비장미가 지배하는 원작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이다.

비극적이고 음울한 정조의 소설과 달리 뮤지컬에는 웃음을 유발하는 대목도 있다. 광대 부부인 훈남과 순금이 그들인데 이들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를 함축한 캐릭터로 보인다. 일종의 극중극 형식으로 펼쳐지는 ‘대신 임금 놀이’나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대장장이 서날쇠의 에피소드를 녹여낸 ‘좋다 뜬다 똥이다’ 등은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뮤지컬 제작진은 이들 부부를 통해 극한의 역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과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누가 뭐래도 러브스토리의 유무다. 소설에는 러브스토리가 없고 뮤지컬에는 있다. 원작 소설에서 가장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는 척화파 김상헌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뱃사공의 어린 딸 나루로 사랑놀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나 뮤지컬은 그 혹독한 시기에도 그곳에 사랑이 있었다고 노래한다. 뮤지컬의 문을 여는 첫 넘버도 매향과 오달제가 함께 부르는 ‘붉은 얼굴’이다. “붉디붉은 그대의 얼굴에 바람아 꽃수를 놓아라”라고 노래하던 그들은 “그 두 눈에 차오른 눈물은 내가 가져가요”(마지막 노래 ‘이대로 끝이라니’)라며 이루지 못한 사랑을 통곡한다.

그러나 작가 특유의 문체와 선비의 어법을 고스란히 살려낸 대사들은 소설 그대로다. 예를 들면 오달제를 포함한 당하관들이 “전하, 명길을 베어 머리를 삼군에 돌리소서”라고 아뢰면 임금이 “젊은이들의 말이 준열하구나. 그대들의 말이 그대들의 뜻인가”라고 묻고 임금의 말을 받아 주화파 최명길이 “두려움이 말을 가파르게 몰아가는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소서”라고 답하는 식이다. 김훈의 대사에는 그만의 묘한 말맛과 리듬이 있다.


남한산성을 품고 있는 성남시가 야심차게 준비한 뮤지컬 ‘남한산성’에 대한 최종 평가는 이제 관객의 몫으로 남았다. 지난 14일 첫 공연 때 수많은 관객과 함께 어두운 객석에 앉아 무대를 지켜봤던 원작자 김훈이 과연 어떤 느낌으로 뮤지컬을 봤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뮤지컬 ‘남한산성’은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오는 11월 4일까지 공연된다. 3만3000∼11만원. 031-783-8000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