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낙태,이를 어찌할꼬?-속편/곽인찬 논설실장



꽤 오래 전 필자는 ‘낙태, 이를 어찌할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낙태의 공론화를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새로마지 플랜 2010)’ 시안을 내놨는데 낙태가 빠져 있었다. 그 때 필자는 낙태를 “쉬쉬하며 감출 게 아니라 양지로 끌어내 사회적 어젠다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2007년) 대선에서는 우리 후보들도 낙태 공약을 정식으로 내놓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명박-정동영 후보가 맞붙은 2007년 대선에서 낙태는 현안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실망한 채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마침 산부인과 의사 한 분이 공론화의 총대를 멨다. ‘진오비’ 즉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의 최안나 대변인이 바로 그 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산부인과 의사의 낙태 반대 운동은 그 자체로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낙태는 산모와 산부인과 의사의 은밀한 합작품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최 대변인은 이를테면 호루라기를 불어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가 된 셈이다. 그러자 일부에선 “잘났다”는 비아냥도 들리는 모양인데 신경 쓸 것 없다. 진오비와 최 대변인은 그야말로 아주 잘하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국이 낙태공화국의 오명을 뒤집어 쓴 것만큼 큰 모순도 없다. 불법 낙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없이 그러나 거리낌없이 이뤄지고 있다. 현행 형법은 산모의 건강 위협 등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불법 낙태를 자행한 산모와 의사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사문화한 지 오래다. 진오비와 최 대변인은 자신들이 속한 이너서클의 손가락질을 각오한 채 불법의 만연을 고발하고 있다. 이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다만 낙태 반대 운동에 나선 이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무엇보다 도덕적으로 우쭐해선 안 된다. 인간은 흔히 선(善)을 강요당할 때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생명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낙태의 고통에 시달리는 산모에게 돌팔매질을 해서는 안 된다. 모성은 본능이다. 오죽했으면 산모가 낙태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겠는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돌팔매가 아니라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다. 낙태 의사들에게도 명예롭게 물러설 기회를 줘야 한다.

불법 낙태에 철퇴를 가할 때 예상되는 부작용도 따져봐야 한다. 낙태는 일종의 필요악이다. 단속한다고 다 없앨 순 없다. 단속이 심해지면 돈 많은 산모는 해외로 원정낙태를 떠나고 가난한 산모는 지금보다 더 은밀하고 불결한 시술대에 오르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1960년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내린 낙태 금지령은 여성들의 삶을 극도로 비참하게 몰아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낙태가 ‘의도하지 않은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학술적 분석도 있다. 스티븐 레빗(시카고대)은 저서 ‘괴짜 경제학’에서 1990년대 미국의 범죄율이 감소한 원인을 1973년 연방 대법원의 낙태 허용 판결(로 대 웨이드·Roe vs. Wade)에서 찾는다. 이 판결 이후, 태어나봤자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 나중에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은 아이들이 미리 ‘제거’됐다는 것이다. 레빗은 “낙태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범죄 감소 요인이라는 발견은 대단히 불쾌한 일”이라면서도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낮췄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는다.

한국은 낙태천국이면서 동시에 입양아 수출국이다. 낙태를 꽉 막았다간 입양아 수출대국이 될 게 뻔하다. 이것이 현실이다.
미혼모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문화·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한 낙태는 피하기 힘들다. 진오비와 최 대변인은 낙태를 둘러싼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대단한 일을 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터놓고 얘기해 보자. 정치인들은 낙태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보자. 낙태 난제를 풀 해법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