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거래소 이사장과 시대정신/이장규 증권부장·부국장



지난 10월 중순 이후 공석이 된 한국거래소 이사장 선임작업이 곧 마무리된다. 공모로 진행된 이번 선출작업에는 10여명이 응모한 가운데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을 거쳐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민간인 3명이 최종 후보로 올라 청와대의 인사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5년 초 증권거래소·코스닥위원회·코스닥증권시장·선물거래소 등 4개 거래소 통합 이후 관료 출신 인사가 연이어 이사장직에 올랐으나 이번엔 처음부터 민간 출신으로 자격을 제한했다. 관료 출신의 전 이사장과 갈등을 겪어 그랬는지 속사정은 알수 없으나 어쨌든 거래소의 주주인 증권업계는 당연히 환영 일색이다. “이번에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 거래소를 개혁해야 한다. 앞으로도 민간 출신이 거래소 이사장에 계속 오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제대로 뽑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최종후보 3명은 모두 증권가에 탁월한 족적을 남긴 업계의 스타 CEO들로 각자 나름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탁월한 조직 장악력, 시장을 읽는 혜안, 적재적소의 용인술로 CEO 재직 시 직원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인물들이라 능력 면에선 누가 선임되든 무방할 정도다.

문제는 시대정신이다. 현재 거래소는 어떤 CEO를, 어떤 스타일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가가 인선의 중요한 잣대가 돼야 한다.

그럼 거래소가 당면한 과제로 돌아가 보자. 거래소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이 상자 안엔 5년 전 거래소 통합 당시 가진 비전과 꿈, 희망, 미래, 글로벌과 더불어 온갖 모순과 파벌, 이기, 갈등 등도 같이 녹아 있다.

한국자본시장과 동북아 금융허브의 핵심 인프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거래소는 지금 세간과 정부로부터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아직도 둘로 나뉘어 1지붕 2가족 신세인 노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유가증권·코스닥·선물·시장감시·경영지원 등 본부별 이기주의, 부산 본사와 서울 사무소간의 단절, 통합 전의 역동성과 벤처정신을 잃어버린 코스닥시장,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 등 현안을 이끌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파생상품본부, 경영통제본부라는 오명을 쓴 경영지원본부등 거래소의 현주소는 암담하다. 최고의 연봉, 신이 숨겨놓은 직장이라는 비아냥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찢어지고 갈라진 거래소 조직 내부다.

통합 전 어느 기관 출신이냐에 따라 또는 지연·학연에 따라, 입사 기수에 따라 심지어 주거 지역에 따라 이리저리 편이 갈리고 경영진은 노조에 휘둘리는 형편이다. 특히 거래소가 지난해부터 전 이사장 거취를 둘러싸고 외압(?)에 시달릴 때 임직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결과와 상관없이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어려울 때 뭉치는 전통은 사라지고 헐뜯기와 남 탓하기, 인사 줄대기가 기승을 부린 것이다. 이 와중에 노조간부가 임원을 폭행하는 하극상까지 발생했으니 거래소의 추락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거래소가 통합 이후 이뤄낸 빛나는 성과가 빛이 바랜 건 이런 연유에서다. 거래소는 지난 5년간 베트남·캄보디아 등 이머징시장 개척, 외국기업 국내 증시 유치,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체계 구축은 물론이고 코스피200지수를 글로벌 히트 상품으로 만들고 불공정 거래를 적발해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일구는 등 혁혁한 성과를 올렸지만 아쉽게도 이런 공을 알아주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개혁 대상 공공기관 1순위로 찍혀 1년 내내 강도 높은 감사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거래소라는 판도라의 상자 안엔 이처럼 온갖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열 시간이 다가왔다. 이 상자를 깰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가 신임 이사장이 돼야 한다. 민간의 창의·열정·혁신으로 판도라의 두껑을 열어젖히자. 그래서 분열·시기·복지부동·무관심·방관·갈등 등 어둠의 자식들을 날려보내고 상자 저 밑바닥에서 꿈틀되고 있는 ‘희망의 싹’을 찾자. 그 희망의 싹을 돋우고 보살펴 거래소를 다시 국민의 사랑받는 ‘자본시장 핵심 인프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신임 이사장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