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내 한쪽 눈을 뽑아달라’/임정효 정보미디어부장

임정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17 19:28

수정 2009.12.17 19:28



어떤 사람이 늘 고대하던 신을 마침내 만났다. 신은 그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선물을 하나 제안했다. “지금부터 네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무슨 소원을 빌든 네 이웃이 그 소원의 2배를 받을 것이다.”

그는 기뻐 어쩔 줄 모르다가 곧 심각해졌다.
“내가 받는 건 좋지만 평소 얄밉던 경쟁자인 이웃사람이 내 2배나 받게 된다니….” 그런 상황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마침내 결심한 듯 소원을 말했다. “내 한쪽 눈을 뽑아주십시오.”

웃음을 참기 어려운 우화이지만 한편으론 섬뜩한 기분을 숨길 수 없는 이야기다. 깊은 곳에 은밀하게 숨겨둔 속마음이 홀랑 발겨 벗겨지는 것 같아서다.

사실 이런 미련한 일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약세장에서 주식을 손해 보면서도 기다리지 않고 과감하게 팔아치우는 사람의 심리도 이런 것이다. “나는 하나를 손해 보지만 내 뒤에 파는 사람은 둘이나 셋을 손해 봐야 할 거야.” 이런 사람은 손해를 봤으면서도 주가가 더 하락하면 오히려 통쾌해 한다.

기업경영 세계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통신서비스시장에서 이동통신업체간 보조금 경쟁이 대표적이다. SK텔레콤이나 KT, LG텔레콤 같은 이통사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구입할 때 제값을 다 주고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정폭 값을 할인해 구입하게 마련이다. 이 때 할인해 주는 돈은 이통사들이 대신 부담한다. 이 이통업체들 부담금이 ‘보조금’이다.

문제는 이통사들이 보조금 지급 규모를 경쟁적으로 확대하면서 공멸의 위기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보조금은 어느 나라에나 있고 또 지출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필요하고 좋은 것도 지나치면 폐혜를 양산하는 법이다.

지난해 이통사들이 보조금 등 마케팅(마케팅 비용 중 대부분은 보조금)에 쏟아부은 돈은 5조9000억원을 넘었다. 이통3사의 영업익이 2조9000억원에도 못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최근엔 KT가 애플의 아이폰을 들여와 팔면서 보조금 경쟁에 불이 붙었다. 가입자들은 2년간 사용 약정만 하면 90만원대 단말기를 공짜로 쓸 수 있다. 아이폰 단말기에 욕심이 난 이용자들이 속속 ‘쇼’로 번호이동을 하자 비상이 걸린 SK텔레콤과 LG텔레콤이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아이폰보다 비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옴니아’를 공짜로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통 3사 모두 보조금 지급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러나 보조금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애플과의 계약상 KT는 내년에도 아이폰을 대대적으로 들여와야 하는 처지고 이를 소화하기 위해 대규모의 보조금을 뿌릴 게 뻔하다. 이통사들간에 격전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과다한 보조금은 이통사들의 경영을 악화시켜 통신산업의 발전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통사들은 매출이 정체 상태에 진입한 지 오래이고 수익이 격감 추세다. 그러나 차세대 망설비나 주파수 확보 등 대규모 투자는 계속해야 하는 처지다. 만약 보조금규모를 절반가량만 줄인다면 이런 문제는 단번에 해소할 수 있다.

보조금은 휴대폰단말기 과소비도 부추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휴대폰 교체주기가 짧다는 건 온세상이 알아준다. 사용중인 휴대폰이 쓸 만 하더라도 공짜로 새 휴대폰을 준다는데 바꾸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사정이 이런데도 보조금 경쟁은 더 가열되고 있다. ‘상대업체가 보조금을 주니 나는 더 줬으면 더 줬지 줄이진 못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가입자는 뺏길수 없다는 게 이통사들의 기본생리다. 이통사들도 이런 형편을 잘 안다.
그래서 보조금경쟁을 자제하자는 결의도 한다. 그런데도 출혈경쟁에 매달리곤 하는 이통사들이야말로 “내 한쪽 눈을 뽑아달라”는 미련한 사람 아니겠나.

/lim648@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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