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월드리포트

[월드리포트] 인플레이션의 정치경제학/최필수 베이징특파원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17 19:32

수정 2009.12.17 19:32



올해 중국은 목표 성장률을 공언하고 경제운용을 시작했다. 연말을 앞둔 현재 8% 성장률은 이미 달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적극적으로 대출을 확대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투자 활동을 벌인 결과다. 이렇게 돈을 푼 결과 올해 추정 통화 증가량은 30%에 달한다. 성장률보다 4배 가까운 돈이 풀린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돈이 풀렸는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10월까지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이는 정부의 엄청난 자본 투입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살아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속을 태웠다. 마침내 최근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1월 경제수치에서 CPI가 0.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자 중국 언론들은 산고 끝에 아기가 태어난 것처럼 반가워하고 있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면 키우는 것이 문제이듯 당장 물가 관리가 심각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성장률로 상쇄되지 않은 통화량 증가분이 물가상승으로 나타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미 모간체이스 등 일부 기관은 벌써부터 내년 한 두 차례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화폐 재정 정책 유지를 선언한 중앙경제공작회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2008년 인민은행이 금리 기조를 인상에서 인하로 하루 아침에 바꿨던 것을 생각하면 금리정책의 조변석개는 앞으로도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건국 60주년을 겪은 중국 공산당은 물가상승 리스크를 어느 누구보다 절실히 겪으며 대처해왔다. 1949년 국민당 패망의 결정적 요인은 경제 운영의 실패로 인한 과도한 인플레이션이었다. 공산당이 장악한 지역에서는 토지를 비롯한 재화의 국유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면서 경제가 안정됐던 반면 상하이 등 국민당이 장악했던 대도시에서는 물가가 수백만배로 뛰었다. 1937년 상하이 물가가 100이었다면 1948년에는 6억6000만에 달했다. 화폐 보유 자체가 무의미한 이른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다. 이러한 물가 폭등의 주범이 친국민당파 재벌들이었으니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은 당연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의 배경도 1988년 분기별 최고 27%에 달했던 인플레이션이었다. 건국 이래 처음 겪어보는 물가 상승에 직면한 인민들의 불만이 학생시위의 형태로 표출됐던 것이다. 놀란 중국 공산당은 개방개혁 노선을 급히 중단하고 민영부문의 경제활동을 억압하며 물가관리에 들어갔다. 1979년 개방개혁 이후 10년 만에 겪는 위기였다. 당시 중국 정부는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대출금리보다 높이는 초강경 정책을 구사했다고 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대출 자체를 통제했기에 가능했던 정책이었다.

개방개혁과 인플레이션의 딜레마는 주룽지 총리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렸다. 주룽지 총리는 부문·지역별로 이뤄지던 개방개혁을 전 부문과 지역에 걸쳐 확대했다. 시장의 룰이 확대됨에 따라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회색지대에서 발생하던 물가불안의 요인이 사라졌다. 수요와 공급의 병목 현상이 사라진 것이다. 또한 농촌 인력의 도시 이주를 허용함에 따라 농민공이라는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 공급원이 출현했다. 이러한 개혁 조치가 절묘한 금리조절 기술과 맞물리면서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십 년 가까이 분기별 3% 이하로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면서 고성장을 구현할 수 있었다.

서구 경제학계에서는 중국의 거시경제 모델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독립된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물가관리가 이뤄지는가 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정권의 이해와 관계없이 전문기관에 의해 통화정책이 보장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가 존재하지 않는 중국은 오히려 인민은행을 정부기구의 하나로 긴밀하게 운용하면서 인플레이션과 성장률을 다뤄왔다.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던 중국 정부의 거시경제 관리 능력이 이제 또 한 번의 시험대에 올랐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파도를 타고 넘기 위해 풀어놓은 통화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cps@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