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관치의 추억/곽인찬 논설실장



#. 그는 1969년 조흥은행에 입사해 금융계에 첫발을 디뎠다. 대신증권으로 옮겨 34세에 상무가 됐고 동원증권 사장을 거쳐 증권맨 출신으로 첫 은행장(옛 주택은행)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2001년엔 통합 국민은행의 첫 행장이 되는 영예도 안았다.

운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카드사태 때 정부에 어깃장을 놓았다.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며 LG카드 지원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화가 치민 금융당국은 회계기준 위반을 들어 문책적 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는 행장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은 이를 두고 “중징계는 관치금융, 시장경제에 조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이름은 금융계 원조 스타 김정태다.

#. 김정태가 LG카드를 놓고 당국과 씨름하던 2004년 삼성맨에서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전격 발탁된 인물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검투사. 우리은행은 그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괄목할 만한 외형성장을 이뤘다. 그런 그가 연임에 실패한 것은 뜻밖이었다. 절치부심, 그는 15개월의 공백을 딛고 2008년 KB금융지주 초대 회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슨 미운털이 박혔을까, 정부는 우리은행장 시절 그가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손해본 것을 뒤늦게 걸고 넘어졌다.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가 이어졌다. 버티기에 한계를 느낀 그는 꼭 1년 만에 KB금융지주 회장에서 물러났다. 명예를 중시하는 검투사답게 제재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놓았을 뿐이다.

그는 금융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취임 직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잇단 위기설 속에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자 정부는 돈을 풀라고 금융권을 압박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거듭된 간청마저 외면했다. ‘제 코가 석자’라는 게 거절 이유였다. 그가 이끄는 국민은행은 리딩뱅크로서 당국이 바라는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황영기다.

#. 황영기가 물러나자 2인자로 머물던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놓고 황영기와 경합했다가 패한 아픈 기억이 있지만 이번엔 자신있었다. 그는 연임에 성공한 현직 행장의 프리미엄을 철석같이 믿었다. 당국이 그에게 욕심부리지 말라며 신호를 보냈으나 짐짓 무시했다. 그의 좌우명은 호시우보(虎視牛步), 범처럼 보고 소처럼 우직하게 걷는다는 뜻이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마침내 뜻을 이뤘다.

부아가 치민 당국은 본때를 보여주기로 작정했다. 국민은행 직원들의 PC 자료를 들여다보고 행장 운전기사까지 불러 왜 전용차가 두 대냐고 캐물었다. 언론에는 그와 한통속인 사외이사들의 비리가 새나왔다. 그는 아차 싶었다. 그 순간 감독 당국과 겁없이 맞서다가 쫓겨난 전임자들의 얼굴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세밑 강추위 속에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직 사퇴를 발표했다. 사실상 백기 투항이었다. 그의 이름은 강정원이다.

#. 김정태-황영기-강정원으로 이어지는 KB와 금융당국의 악연은 질기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철퇴가 가해졌다. 지분율 제로의 정부가 권한은 대주주 저리가라다. 관치의 추억은 달콤하다. 자기 사람을 앉히면 고개만 까닥해도 다 알아듣는다. 퇴직 관료 재활용 측면에서도 관치는 매우 유용하다. 얼마전 사석에서 한 현직 관료는 “나중에 한 자리 하려고 행시 패스한 엘리트 공무원들이 저임을 감수하며 일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솔직히 말했다. 한 자리 하려고 현직에 있을 때 슬쩍 봐주는 부정부패는 어찌할 셈인지, 우리 사회에 퇴직 관료만 재활용하라는 법이라도 있는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은행의 독립선언은 시기상조임이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순부터 한달간 KB금융·국민은행을 샅샅이 파헤치는 종합검사를 실시한다. 결과에 따라선 경영진의 대대적인 교체도 예상된다. 과연 누가 빈자리를 채울지 지켜보자.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