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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내비게이션 끼워팔기는 ‘위법’/손인옥 공정거래委 부위원장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1.24 18:02

수정 2010.01.24 18:02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동차 제조회사들이 자동차를 판매하면서 동승석(조수석) 에어백을 선택할 경우 내비게이션 등의 편의 장치를 끼워 파는 것이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보아 이를 시정하도록 했다. 그 동안 소비자들은 이러한 내비게이션 등을 구매의사에 관계없이 구입하게 됨에 따라 수백만원을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추가로 부담해 왔다.

공정거래법상 끼워팔기의 성립요건은 주된 상품을 공급하면서 부당하게 종된 상품을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예식장 사용 시 드레스 구입을 강제하거나 사진촬영도 그 예식장에서 운영하는 사진관을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다. 여기서 주된 상품은 예식장 사용이고 종된 상품은 드레스 또는 사진촬영이다. 결혼하는 신부의 입장에서는 예식장을 사용하더라도 드레스는 다른 전문점에서 구입해 자기가 원하는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식장이 드레스 구입을 강제할 경우 마음에 들지도 않은 드레스를 비싸게 구입하게 돼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은 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수만 가지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고 다양한 옵션 판매가 제도화됨에 따라 예식장의 경우와 다르게 주된 상품과 종된 상품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자동차는 크게 엔진, 차축 등의 동력장치, 동승석 에어백 등의 안전장치, 내비게이션 등의 편의장치로 나뉘어진다. 동력장치가 있는 자동차는 주된 상품이고 편의장치는 종된 상품이라고 쉽게 분류될 수 있지만 안전장치의 경우에는 판단이 쉽지 않다.

이에 공정위는 전문조사기관에 안전장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결과 소비자들의 87.2%가 동승석 에어백의 필수성을 인정해 설치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동승석 에어백을 장착한 자동차가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상품으로 자리잡았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조사결과에 따라 공정위는 동승석 에어백이 장착된 자동차를 주된 상품으로 보고 편의장치 등을 종된 상품으로 판단했다. 이번에 ‘차체자세제어장치(VDC)’나 ‘사이드와 커튼식 에어백’도 문제가 됐지만 이들 안전장치가 장착된 자동차를 주된 상품으로 보지 않은 것은 이들 안전장치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34.5%(사이드와 커튼식 에어백) 또는 57.5%(VDC)로 낮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정명령의 의의는 주된 상품의 결정에 있어서 소비자 의견 또는 인식을 기초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즉, 자동차 제조사들은 원칙적으로 옵션으로 장착할 수 있는 장치를 단계(Trim)별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 재량을 가지고 있는데 동승석 에어백의 경우 소비자들이 안전을 위한 필수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초로 가장 낮은 단계의 차량에서 구매가 가능하도록 옵션을 운영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의 통합(convergence)이나 진화와 관련된 것으로서 과거에는 하나의 상품으로 볼 수 없었던 것도 시대의 변화 또는 소비자 인식의 변화에 따라 하나의 상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로 소비자들은 자동차 구입시 동승석 에어백을 위해 내비게이션 등의 편의장치를 추가로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나아가 내비게이션이나 오디오플레이어 등의 편의장치를 취급하는 자동차용품 판매업소들은 보다 자유롭게 자동차 회사들과 편의용품 판매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경쟁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각종 편의 제품을 보다 낮은 가격으로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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