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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기행] (2) 녹십자,글로벌 백신名家 입지 다져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5.03 19:55

수정 2010.05.03 19:55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인다.”

녹십자 창업주인 고 허영섭 회장이 ‘목암생명공학연구소’를 세우며 남긴 말이다.

지난 1983년 녹십자가 세계 3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B형 간염 백신 ‘헤파박스’는 이제까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B형 간염 백신이 됐다. 허 회장은 지난 84년 헤파박스 성공으로 발생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국내 생명공학 연구기반 조성과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키로 결정했다.

주변의 반대는 심했다. 그만한 여력이면 연구 환경이 나은 외국에 백신 연구소를 설립할 수도 있고 다른 사업에 투자해 기업 덩치를 키울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때 허 회장은 말했다. “우리가 벌어들인 돈을 다시 이 나라에 투자해 인재를 우리 땅에서 키워야 한다.”

그렇게 국내 첫 민간 연구재단인 재단법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가 탄생했다. 녹십자가 백신의 명가로 탄생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지난해 4월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발생하며 멕시코에서만 6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신종플루’로 불리는 이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졌다. 치료제 공급이 신종플루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백신 자체 생산이 가능한 11개국 이외의 국가들은 백신 확보 전에 돌입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녹십자는 그 즉시 전남 화순 백신공장을 가동했다. 지난해 6월 8일 발 빠르게 백신 제조용 균주를 입수했고 개발에 착수해 지난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청 최종허가 승인을 받았다.

녹십자가 개발한 신종플루 백신은 지난해 10월부터 국내 성인·청소년·아동들에게 투여됐고 신종플루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이 세계 12번째 백신 자급자족 국가가 된 것이다. 녹십자가 지난 2005년부터 화순 백신생산시설과 공정 개발에 과감히 투자해 백신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녹십자는 신종플루 백신 매출에 힘입어 지난 한해 643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대비 25% 성장한 규모다. 그리고 그 수입을 다시 백신 개발에 투자키로 결정했다.

새로운 도전 과제는 세포배양 방식의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이다. 동물세포를 이용해 생산되는 인플루엔자 백신은 유정란으로 생산하던 백신에 비해 생산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전염병 발생 시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지난 2007년부터 세포배양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에 착수한 녹십자는 현재 세포배양 백신 개발의 핵심 기술인 세포주 확립에 성공한 상태다.

녹십자 이병건 사장은 “창업주는 백신으로 얻은 이익을 연구소 형태로 사회에 환원하고 연구결과로 얻어진 이익을 다시 연구소로 귀속시키는 ‘풍요의 사슬(rich-cycle)’ 형성에 뜻을 뒀다”며 “신종플루 백신으로 얻은 이윤을 세포배양 방식의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에 재투자해 창업주의 뜻을 잇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 녹십자는 세포배양 인플루엔자 백신을 비롯해 바이오의약품 8개, 합성신약 2개, 천연물신약 2개 등 개발단계에 진입한 과제만으로도 총 20여개의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seilee@fnnews.com 이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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