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긴축 vs 성장의 딜레마/곽인찬 논설실장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7.06 18:23

수정 2010.07.06 18:23

헷갈린다. 이쪽도 옳은 거 같고 저쪽도 옳은 거 같다. 묻노니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지금이 긴축으로 방향을 틀 때인가 아니면 회복에 박차를 가할 때인가.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독일 등 유럽이 옳은가,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미국이 옳은가. 두 거인이 옥신각신하는 동안 제3자인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긴축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얼마 전 그는 좀 무시무시한 제목의 칼럼을 뉴욕타임스지(6월 27일자)에 실었다. 이름하여 '제3의 불황(The Third Depression)'. 세계 경제가 19세기 후반의 장기불황(Long Depression)과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이어 세번째 불황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는 게 크루그먼의 진단이다. 부양 공조가 깨지고 여러 나라가 긴축으로 돌아선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긴축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총대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멨다. 천성적으로 독일인들은 빚을 혐오한다. 신용카드보다 직불카드가 더 인기인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신용카드는 먼저 쓰고 나중에 갚는 외상 결제다. 반면 직불카드는 쓰는 즉시 자기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빚이 싫어 신용카드조차 꺼리는 독일인들에게 인위적인 부양은 이해하기 힘든 정책이다. 살림이 거덜났는데 허리띠를 졸라맬 생각은 않고 외려 돈을 더 풀겠다니 말이다.

독일 정치인들은 빚쟁이 그리스에 "섬과 유적, 예술품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다그쳤다. 분수를 모르고 놀아난 대가를 먼저 치르라는 것이다. 재정적자 대국인 미국의 행태도 독일인들의 눈엔 못마땅하게 비칠 것이다. 버거운 상대라 꾹 참고 있지만 만만한 상대 같으면 벌써 "하와이라도 팔아서 빚부터 갚으라"고 재촉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거덜났으면 허리띠부터 졸라매는 게 정통 해법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에 요구한 게 바로 이거다. 한국은 이를 악물고 쓴약을 삼켰다. 그런데 막상 미국이 당하니까 해법이 180도 달라졌다. 돈을 풀어 고통을 최소화하는 당의정(糖衣錠) 처방이 정답으로 둔갑했다. 대공황 때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역사적 교훈도 당의정 처방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일 뿐이다. 만약 대공황 때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었다가 재정위기가 나타났다면 그 반대의 교훈을 얻었을지 누가 아는가. 그랬다면 오로지 긴축만이 살 길이라고 설파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목에 힘을 주고 있을 것이다. 경제학은 허점투성이 학문이다. 특히 예측력은 형편없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경제학자들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게 됐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일률적인 잣대는 없다. 위기의 긴박감이 사라지자 마이웨이가 시작된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 재정적자에 신경을 덜 쓰고 부양·성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이다. 돈이 모자라면 달러를 더 찍으면 된다. 그래도 안전자산 달러를 사겠다는 투자자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궁극적으론 흔해 빠진 달러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믿을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위기의 순간마다 달러값이 오르고 미 국채(TB)로 돈이 몰리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달러에 비하면 유로는 약골이다. 미국 흉내 내려다 가랑이 찢어질 판이다. 흔해 빠진 유로는 휴지 조각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니 마른 수건을 쥐어짤 수밖에 없고 흥청망청 그리스는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1992년 소로스의 핫머니 투기로 곤욕을 치른 영국 파운드화도 유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경제 정책에 정답은 없다. 기준이 있다면 국익이 있을 뿐이다. 국제 공조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금융위기 직후의 부양 공조는 마침 각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지 무슨 거룩한 이념이나 인류애를 따른 게 아니다.
우리도 가장 유리한 정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재정을 중시한다면 유럽식, 성장을 중시한다면 미국식을 따르면 된다.
물론 재정·성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한국식 제3의 길이 최상이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쫀쫀한 성격상 나는 긴축에 찬동하는 편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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